[손학규 경기지사 당선자] YS때 뜬 '학구파 운동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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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한나라당 손학규(孫鶴圭)경기도지사 당선자는 재수(再修)끝에 당선의 기쁨을 맛봤다. 그는 한나라당이 1997년 대선에서 패한 뒤 이듬해 치러진 도지사선거에서 국민회의(민주당 전신) 임창열(林昌烈)후보에게 24만표차로 낙선했다.

孫당선자로선 정치입문 후 첫 패배였다. 그는 93년 김영삼(金泳三)정부 때 광명을 국회의원 보궐선거 당선으로 정계에 입문한 뒤 집권당(신한국당)대변인·보건복지부 장관을 거쳤다. 2000년 4·13 총선에서 3선 의원에 당선되자 곧바로 보름 뒤에 열린 한나라당 총재경선에 출마, 이회창(李會昌) 당시 총재에게 도전했지만 쓴맛을 봤다.

孫당선자는 이날 오전 7시40분쯤 부인 이윤영(李潤英·54)씨와 함께 투표한 뒤 잠시 잠적했다. 방송사 출구조사에서 승리할 것으로 예측됐으나 그는 말을 아꼈다."유권자의 최종 평가를 기다리겠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승리가 확정된 뒤에야 인터뷰에 응했다.

-승리요인은.

"경기도민들이 부정부패 정권에 대한 심판을 하겠다고 결심한 것이 승인이 됐다. 또 도민들이 생활수준 향상을 원했고, 민생을 챙길 수 있는 지사를 택했다고 본다."

-도정을 어떻게 운영하겠는가.

"첫째가 공정한 인사다. 좌우명이 가는 곳마다 주인이 돼서 주인의식을 갖고 모든 일을 수행하라는 것이다. 이게 중요하다고 본다."

-상대후보가 안기부 자금건으로 집중 공격했다.

"네거티브여서 유권자들에게 어필하지 못했다.나는 그같은 전략이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봤다.안타까웠다."

孫당선자는 경기도 시흥에서 태어난 경기 토박이. 그는 이른바 '운동권'이었다. 서울대 정치학과 재학 중 한일회담 반대시위로 법대의 조영래(趙英來), 상대의 김근태와 함께 '운동권 3총사'로 불렸다. 2년간 '현상금 2백만원, 2계급 특진'이 걸린 수배자로 떠돌다 결국 어머니 장례식날 체포됐다. 79년 부마사태가 발생하면서 체포됐으나 80년 서울의 봄이 오면서 풀려났다.

그는 여느 운동권 출신과 달리 "머리를 채우겠다"며 영국 유학길에 올랐고 돌아와서는 인하대·서강대 교수를 지냈다. 경기고 재학시절 연극반에 있던 게 계기가 돼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하기도 했다.47년생(55세). 부인 이윤영씨와 2녀.

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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