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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과학자를 한번도 단죄하지 못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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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compelled to fear that science will be used to promote the power of dominant groups rather than to make men happy. 나는 과학이 인간을 행복하기 만들기보다 지배그룹의 권력을 강화하는데 사용될 것이라는 두려움을 벗어 던질 수가 없다 –버트란트 러셀(1872~1970), 영국의 철학자, 수학자, 평화주의자 –

사실 20세기 최고의 지성으로 평가 받고 있는 철학자이자 수학자 버트란트 러셀이 1925년에 한 이 예언은 맞아 떨어졌다. 2차 대전을 겪으면서 과학과 과학자들은 권력자의 편에서 가공할 만한 위력의 무기를 만드는데 앞장섰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지만 무기개발경쟁은 여전

애국심의 발로였던, 아니면 권력자의 위협적인 강압에 마지 못해 했던 간에 과학자들은 권력자의 전쟁에 앞장섰다. 전쟁이 끝난 후 세계를 불안의 도가니로 몰아 넣은 미국과 소련이 대립하는 냉전, 그로 인해 이어지는 무기개발 경쟁이 가속화 됐다.

1989 냉전의 상징인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지만 여전히 신무기개발경쟁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군수산업에 의한 무기수출은 가장 돈이 많이 남는 장사다.

그 속에는 항상 과학과 과학자들이 있다. 어쩌면 과학자들은 그러한 길을 걸어야만 하는 전생의 업보를 짊어지고 태어난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생존해야 된다는 대명제 앞에서는 할 수 없이 말이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과학철학과 과학윤리를 강의하면서 저널리스트로도 활약하고 있는 존 콘웰(John Cornwell) 교수는 그의 저서 <히틀러의 과학자들 hitler’s scientists>에서 “2차 대전에 참여했던 과학자들의 반이륜적 행위를 단죄하지 못한 것은 과학역사상 최대의 실수”라고 강조한다.

2차 대전은 과학자를 단죄할 수 있는 기회, 그러나 놓쳐

그는 “독가스 무기를 비롯해 무인폭탄(오늘날 유도폭탄), 심지어 원자폭탄과 같은 대량살상 무기개발에 앞장섰던 과학자들에 대해 물리적 단죄가 아니라 적어도 역사적 심판을 가했어야 했다”고 주장한다.

어린 시절 독일 최초의 무인 폭탄인 V1(당시 런던 사람들은 이 폭탄을 개미귀신이라고 불렀다)이 런던을 무참하게 파괴시키는 장면을 목격하면서 자란 콘웰 교수는 “당시 전쟁에 앞장섰던 과학자들은 단죄 받기는커녕 오히려 대접을 받았다”며 “오늘날 과학자들이 윤리와 도덕 앞에서 무감각하게 한 선례를 남겼다”고 아쉬워한다.

그는 비단 히틀러에게 아부했던 독일의 과학자들만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독일로부터 받은 앙갚음을 하기 위해 살상무기개발에 앞장섰던 영국 과학자들에 대해서도 혹독한 비난을 가한다.

그는 또한 당시 미국의 원자폭탄 개발계획인 맨하탄프로젝트를 낱낱이 해부하면서 전쟁을 빨리 끝낸다는 명분으로 추진된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과학자들에게도 결코 면죄부를 주지 않는다.

원자폭탄 과학자들은 다시 수소폭탄 과학자로

존웰 교수는 독재자 히틀러가 패하고 연합군의 승리로 전쟁이 끝났지만 맨하탄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과학자 상당수가 원자폭탄의 수십 배에 이르는 수소폭탄개발을 건의했고 이러한 작업에 참여했다고 꼬집으면서 “상당수의 맨하탄 과학자들도 역사적인 심판의 대상이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그는 이러한 질문을 던진다. 패하면 죽을 수 밖에 없는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사건인 전쟁에서 인간이 저지르는 모든 행위는 정당화될 수 있는가? 살인적인 무기개발, 때로 이를 위해 자행되는 생체실험까지도 용인돼야 하는가?

그는 다시 전쟁이 없는 평화의 시기로 돌아와 이런 질문을 던진다. “한발 양보해서 전쟁에 참여했던 과학자들은 논외로 치자. 과학자들은 국익을 위해서인가,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인가? 지금도 대량살상 무기개발에 참여하는 과학자들은 많다. 뿐만이 아니다. 생명과학의 이름으로 생명이 위협받고 있다”

이제 과학은 우리의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필수품이나 다름 없는 휴대폰이나 컴퓨터를 넘어 우주여행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과학과 기술이다. 이처럼 과학과 기술의 지배력은 엄청나다.

그러한 대단한 권력에는 당연한 비판이 가해져야 한다. 비판이 없는 권력은 오만하고 방자하며 우리의 최고의 선인 휴머니티와 그리고 자유를 후퇴시키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민주주의다.

베일에 싸인 과학은 기만이 되기 싶다

베일에 싸인 과학은 결코 인류의 복지를 위한 과학이 될 수 없다. 기만이 되기 싶다. 천안함 사건도 그렇다. 과학적 논쟁의 대상이 돼야 한다. 그래서 진실을 가려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과학자를 신뢰하게 된다. 그리고 존경하게 된다.

과학자들은 이공계 기피현상을 걱정한다. 그래서 그들은 이공계 지원자들에게 파격적인 대우를 요구한다. 대학 납부금 액수에서부터 심지어 등록금대출 이자에 이르기까지 일반 다른 전공자들보다 유리한 조건을 제시해줄 것을 정부에 당부한다.

너무나 근시안적 안목이다. 과학자를 존경하는 사회와 그 분위기는 과학자들 자신이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공계기피 현상이 사라질 것이다. 또한 과학연구에 정진하려는 똑똑하고 야무진 젊은이들이 몰려들 것이다.

우리 한국 사회에서 존경 받는 과학자들은 누구일까? 그들은 우리 청소년들의 모델이 되고 있는가? 과학자란 과연 업적과 성과물로만 모든 것을 이야기하는 직업일까? 과학자에 앞서 이 시대를 리드하는 지성이고 엘리트라면 진실의 편에 설 수 있어야 한다. 그게 훌륭한 과학자다. (계속)

김형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