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사회 활력 있으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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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지난해 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경제보고서에서 2022년에는 65세 이상 노인인구의 비중이 14%를 넘어 고령사회로 접어든다는 점을 지적해 일부 신문에 보도됐지만 각종 게이트에 파묻히고, 대선 후보 선출에 가려 우리들의 주목을 끌지 못했다. 중앙일보는 최근 1천만 노인시대를 예고하면서 우리의 경각심을 일깨우고 있다.

요양보험보다 시설 확충

우리나라는 이미 1999년에 합계출산율(부인이 일생 동안 낳는 자녀수)이 1.47로 떨어져 앞으로 인구성장률은 마이너스가 되며 고령사회가 될 것이라는 예고를 했지만 우리는 관심없이 지나쳐 버렸다. 일본에서는 몇년 전 합계출산율이 1.5 이하가 되자 총리 주재로 비상내각을 열어 저출산시대를 대비하는 대책을 마련했던 것과 무척 대조되었다.

올해 4월 세계보건기구는 활력있는 고령이라는 정책보고서를 발간해 저출산국들의 정책 구상에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주내용은 활력있는 고령사회를 만들기 위해 보건·사회참여·사회보장이라는 세 가지 각도에서 대비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서구 선진국들은 저출산이 초래하는 고령화에 대비해 연금제도·건강보험제도·의료제도를 개혁하고, 노인 복지제도를 손질하고, 노인들의 사회참여를 위한 대책을 마련하고, 출산장려책을 강구하는데 우리는 눈앞의 일에만 매달려야 하니 안타깝기만 하다.

저출산이지만 인구밀도가 세계 최고수준이라 우리는 출산을 장려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고령화에 대비한 제도 개혁이나 미비한 제도를 보완하는 데 있다. 당장 급한 것은 노인들을 위한 요양시설을 확충하는 일이다. 지난해 정부는 보험재정 파동이 나자 요양보험을 대책의 하나로 내세웠는데, 요양시설이 부족한 상황에서 요양보험 도입은 아무런 대책이 되지 못한다. 요양시설에 대해 공공자본의 투자 없이 요양보험부터 도입하게 되면 요양시설은 민간자본의 차지가 되어 요양과 관련되는 비용부담이 엄청나게 될 것이다. 요양시설에 대한 공공투자를 먼저 생각하고 다음 단계로 요양보험의 도입을 생각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동시에 의료체계의 개혁도 필요하다. 우리의 의료체계는 급성질환에 대처하기 위해 병·의원 중심으로 짜여 있다. 고령화는 만성질환의 관리를 요구하기 때문에 의료체계도 만성질환을 관리하고 건강을 증진시키는 체계로 구조개혁을 해야 한다. 노인들에겐 의료서비스와 함께 복지서비스가 필요하기 때문에 보건소의 구조도 근본적으로 개혁해 복지서비스까지 동시에 제공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저출산은 생산연령층의 비중을 줄이는 문제가 있다. 뒷 세대가 앞세대를 도와주는 현재의 국민연금제도로는 재정파탄을 방지할 수 없다. 국민연금제도는 적립방식을 도입할 수 있도록 근본적인 개혁을 서둘러야 한다. 건강보험 역시 재정을 부담하는 인구층의 비중이 줄어드는 점을 감안해 효율성을 제고시키기 위한 대책으로 제도내의 경쟁원리 도입, 의료체계 개혁과 연계시키는 개혁안들이 종합적으로 강구돼야 한다.

정년제도 손질 서둘러야

노인 인구의 사회참여는 근로에서의 참여가 가장 중요하다. 정년에 대한 적정연령도 재검토돼야 한다. IMF관리체제 이후 조기퇴직이 강조됨에 따라 50대 후반이면 근로 현장에서 멀어져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렇다 보니 정년이 없는 의사·한의사·약사·변호사직이 인기를 끌어 우수 인재는 의과대학으로 몰리고, 대학에 들어온 학생들은 너도 나도 고시열풍에 휩싸이고 있다. 활력있는 고령시대를 대비하는 측면도 중요하지만 의과대로, 사법고시로 두뇌들이 몰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도 정년제도에 대한 재검토와 함께 노인의 사회참여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는 모두 노인이 된다는 사실을 인식해,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고령사회를 활력있는 사회로 만들기 위한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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