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만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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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그림과 말풍선 안의 대사. 시각에만 의존해야 하는 데다 분절된 정지화면으로 구성되는 만화와, 청각과 연속성을 본질로 하는 음악은 과연 맞는 궁합일까요? 한국과 일본의 음악만화들의 대답은 단연 "예스!"입니다.

만화와 음악 모두 신세대의 문화적 감성을 상징하는 아이콘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만화와 음악의 결합은 절묘한 아이러니이지요. 'BECK'(해럴드 사쿠이시)과 'ONE'(이빈)은 음악만화가 신세대 감성과 만나는 생생한 현장입니다.

'BECK'의 주인공 유키오는 소녀 이즈미의 마음을 끌어보겠다는 생각으로 기타를 손에 잡습니다. 하지만 밴드 'BECK'을 통해 만난 류스케의 카리스마와, 괴짜 기타 선생 사이토의 열정, 총알 자국에 어두운 비밀을 감춰둔 기타 루실의 매력에 빠져들게 되지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음악에만 몰두하는 그의 모습은, 자신이 인정한 분야라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오타쿠(골수팬)'의 경지에 오르고야 마는 일본 신세대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작가 해럴드 사쿠이시의 해박한 음악 지식 역시 '오타쿠'다운 면모이겠지요.

'BECK'이 한 소년의 뮤지션 성장기라면, 'ONE'은 젊은이의 뮤지션을 향한 꿈과, 그것을 이용하는 기형적인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저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이 하고 싶을 뿐인 원음파.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인 기획사에게 음파는 그저 '돈이 되는 캐릭터'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결국 음파는 '진짜 음악을 하는 한 사람(ONE)이 되기 위해' 인기 정상의 자리에서 모든 이의 허를 찌르며 은퇴를 선언합니다. 연예인이 되고 싶은 청소년들의 꿈을 이용하고, 돈으로 그룹을 만들고, 순위를 조작해 거짓 인기를 조성하는 작품 속 기획사는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279세대'의 우상 서태지를 연상시키는 음파의 은퇴를 통해 작가 이빈은 진정한 뮤지션들이 설 자리에 마네킹 스타를 양산하고 있는 한국의 대중음악 시스템에 통렬한 한 방을 날리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형식적인 면으로도, 음악의 선율을 마치 귀에 들리는 듯 표현해내는 음악만화의 미학은 빼어난 것입니다. 연속되는 화면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영화나 애니메이션과 달리 컷과 컷의 여백 사이로 읽는 이의 적극적인 연상을 이끌어내는 열린 형식을 가졌기에 가능한 미학적 성취이겠지요. 이런 열린 감성에 의해 크게 진화해갈 현대 만화의 미래를 기대해봅니다.

<만화기획자·hojenhoo-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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