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변'에 불안한 축구 강국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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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축구공은 둥글다."

축구경기에는 항상 이변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이 말이 새삼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2002 한·일 월드컵 개막전에서 본선 첫 출전국인 아프리카의 세네갈이 지난 대회 챔피언 프랑스를 꺾는 파란을 일으키자 출전국들 사이에 상반된 반응이 교차되고 있다. 우승후보인 아르헨티나·브라질 등은 "또 다른 이변의 희생자가 될 수 있다"며 바짝 긴장하고 있다. 반면 객관적 전력상 중하위권으로 평가되는 팀들은 "우리도 돌풍의 주역이 될 수 있다"며 용기를 내고 있다. 월드컵 본선 출전국의 주전 선수 대부분이 이탈리아·프랑스·스페인의 유명 프로리그 소속으로 실력 차가 거의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또 다른 다크호스가 등장할 가능성은 항상 남아 있는 셈이다.

◇안개 속의 A조

'16강 구도 시계(視界)제로'.

A조의 16강 구도는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상황이다. 당초 전문가들은 프랑스를 이번 대회 강력한 우승 후보로 지목하면서 프랑스가 3승 혹은 2승1무 정도로 무난히 조1위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뚜껑이 열리고 나니 그렇지 않았다.

프랑스팀 관계자들은 1일에도 "90년 이탈리아 월드컵 개막전에서 카메룬에 덜미를 잡힌 아르헨티나도 이후 팀을 추슬러 결승까지 올랐다"며 애써 충격을 감추고 있다.

프랑스 취재진은 "프랑스가 16강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부상에도 불구하고 지단을 조기 투입해야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프랑스·세네갈과 함께 A조에 속한 덴마크·우루과이 역시 부담스럽다는 입장이다.

조2위를 다툴 것으로 예상했던 두 팀은 세네갈이라는 복병의 등장으로 경쟁자가 하나 더 늘었다. 16강 진출을 위한 '경우의 수'계산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할 판이다. 덴마크의 경우 프랑스가 세네갈·우루과이를 연파하고 조1위를 확정지으면 자신들과의 마지막 경기에서는 전력을 다하지 않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오히려 정반대 상황이 연출되고 말았다.

세네갈 역시 안심할 처지는 아니다.남은 두 팀의 전력이 결코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우루과이나 덴마크는 세네갈의 장·단점을 파악, 세부적인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불안한 우승 후보들

프랑스와 함께 이번 월드컵의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히는 아르헨티나(F조)의 마르셀로 비엘사 감독은 1일 "에르난 크레스포 대신 가브리엘 바티스투타를 첫 경기 최전방 공격수로 기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르헨티나가 유력한 득점왕 후보 크레스포를 빼고 노련한 33살의 바티스투타를 투입한 이유는 2일 나이지리아와의 조별리그 첫 경기 때문이다. 90년 이탈리아 월드컵 개막전에서 아프리카의 카메룬에 0-1로 패했던 아르헨티나로서는 아프리카 돌풍의 제2의 희생양이 되지 않으려는 고심이 엿보인다.

'영원한 우승후보' 브라질 역시 조심하는 눈치다. 당장 브라질 현지 언론은 3일로 예정된 터키전을 걱정하는 눈치다. 터키 역시 지역예선 12경기에서 8골밖에 허용하지 않은 탄탄한 수비와 세계 정상급 스트라이커인 하칸 쉬퀴르가 포진해 만만하게 볼 수 없는 상대다.

이탈리아의 조반니 트라파토니 감독도 "개막전은 에콰도르와 첫경기를 치를 우리 선수들에게 많은 교훈이 됐다"고 밝혔다. 최근 두차례의 월드컵 본선에서 첫 경기를 무승부(94년)와 패배(98년)로 먹칠했던 이탈리아로서는 에콰도르전에 경계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벨기에도 선수단에 월드컵 기간 '섹스 금지령'을 내리는 등 비상사태다.

◇꿈에 부푼 변방국들

세네갈의 선전은 강팀과 맞붙어야 하는 축구의 변방 국가들에게 희망의 빛을 던져줬다.

한국 대표팀의 송종국은 1일 "세네갈이 최강 프랑스를 꺾는 것을 보면서 자신감을 많이 얻었다"며 한껏 고무된 표정이었다.

오는 5일 포르투갈과 첫 대결할 미국의 브루스 어리나 감독은 1일 기자회견에서 "앞으로도 약팀이 강팀을 꺾는 일이 자주 있을 것이다. 우리는 FIFA 랭킹이 포르투갈보다 낮지만 전혀 개의치 않는다"며 결전 의지를 천명했다. 중앙 수비수인 제프 어구스도 "우리의 기본 수비 형태는 포백이지만 나머지 선수들도 모두 수비에 가담할 것"이라며 세네갈이 취한 '선수비-후공격'의 시스템을 받아들일 것임을 암시했다.

전진배·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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