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이우정 민주당 상임고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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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나를 써먹을 수 있을 만큼 써. 나를 최대로 이용하란 말이야."

지난달 30일 79세를 일기로 타계한 '한국 여성노동운동의 대모' 이우정(愚貞) 민주당 상임고문.

고인이 생전에 측근들에게 늘 하던 말이다.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면서 일평생 고통받는 약자들을 위해 살아온 고문은 항상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이 쓰여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줄곧 빈소를 지키고 있던 한나라당 이연숙(67)의원은 "고문은 주변에서 용돈으로 쓰라고 돈을 조금 드려도 여성 노동자를 위한 기금으로 모두 내놓으시곤 했다. 자신을 위해선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분이었다"며 애도했다. 또 "상으로 받은 금메달까지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계 당시 금모으기 운동에 다 내놓았다"고 말했다.

고인은 '자유종'을 쓴 신소설 개척자인 고(故) 이해조씨의 친손녀다.

학식있고 넉넉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가 자기 몸을 희생하는 고단한 삶 속으로 뛰어들게 된 데는 해방신학의 영향이 컸다. 고문은 생전에 "경기고녀(현 경기여고) 재학 시절 일제의 정신대 차출을 피해 숨어다니는 동안 처음 기독교를 접한 것, 그리고 캐나다 엠마누엘대 유학 후 1953년 한신대 교수로 부임해 해방신학을 알게 된 것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었다"고 말했다.

지배자가 아닌 억눌린 자의 시각으로 세계를 해석하는 해방신학은 고문에게 억눌린 자 가운데 가장 억눌린 자인 여성들의 고통에 눈을 돌리게 하는 결정적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고인이 여성 노동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70년 한신대 교내 분쟁으로 교수직을 사퇴한 뒤 여공들의 참상을 목격한 이후다. 그는 생전에 여성신문과의 회견에서 "당시 노동자들의 여건은 대체로 열악했지만, 여성 노동자들의 상황은 더 형편없었다"며 노동운동에 뛰어든 계기를 회고했다. 또 기생관광 근절 운동을 주도하기도 했다.

"기생 관광도 애국"이라며 회유하던 문공부 국장에게 "선생 딸부터 관광기생을 만드시오"라고 호통친 것은 유명한 일화다.

그는 86년 한국여성단체연합(여연)을 창설해 '권인숙 성고문 사건'을 파헤치는 등 여성 노동자를 위해 끊임없이 뛰었다. 90년대 들어서는 관심을 남북 문제로 돌렸다.

고인은 92년 70세의 나이로 민주당 전국구 의원이 돼 제도권에 진입했다. 그는 이연숙씨와 함께 통일과 평화를 생각하는 단체 '평화를 만드는 여성'을 만들어 굶주리는 북한 어린이들에게 1억5천만원 어치의 분유를 보냈다.

민주당 신낙균(61) 의원은 "미혼이지만 손주까지 다 키워본 사람처럼 너그럽고 부드러운 분으로 언제나 기댈 수 있는 큰 언덕이었다"고 아쉬워했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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