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에서 신사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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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경기가 있는 이날 수업은 교수 재량에 의해 실시하기 바란다는 학교 당국의 협조전(協助箋) 공문을 회람하고 나서야 나는 월드컵 축구가 '남의 일'이 아님을 실감했다. 축구 시합 때문에-이런 무식이라니-수업을 피해달라는 주문이 다소 민망했던지, 회람에는 "범국가적 차원…성공적 개최…적극 협조" 등의 문구가 나열돼 있었다. 애국이냐 수업이냐의 '쌍갈래' 마음으로 나는 적잖이 망설였다.

애국이냐 수업 우선이냐

그러고 보니 나도 무식하지 않은 때가 있었다. 1974년 독일 월드컵 결승전을 시청하며 그 독한 축구 열기에 나도 모르게 열광했기 때문이다. 설원의 순록이라는 네덜란드 팀의 주장 크루이프는 이날 오렌지색 유니폼의 '게릴라 부대'를 뮌헨 구장에 풀어놓고 적진 격파를 지휘하고 있었다. 독일 '기갑사단'의 작전 참모 베켄바워 역시 한 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치밀한 반격으로 조국을 구했다. 율리아나 여왕의 관전 불참으로 서운해하던 네덜란드 팀에 행운은 다른 데서 찾아왔으니, 시합 개시 1분 만에 페널티킥을 얻었기 때문이다. 고혈압이나 협심증 환자한테는 아주 위험한 충격적 판정이었다. 글쎄 그게 어떤 시합인데 멋대로(?) 페널티 호각을 불어젖힌 심판의 배짱도 두둑했지만, 내게는 독일 선수들의 거친 항의를 다독거리며 경기를 이어나간 베켄바워의 침착이 한층 감명 깊었다. 전반 26분 이번에는 독일에 행운을 안겨준 페널티 골이 터졌다. 또 하나의 페널티킥 선언이 웬지 떨떠름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로써 주심을 합쳐 12명과 싸웠다는 독일 측의 원성은 피하게 됐다. 패자는 심판 때문에 지고 승자는 심판에도 불구하고 이겼다는 핑계가 그 바닥의 전설 아닌가? 전반 종료 직전 한 골을 더해 승리는 '독일 병정'한테 돌아갔는데, 20년 만의 우승도 축하할 일이지만 '페어 플레이' 트로피를 함께 받은 것이 특히 기억에 남았다.

축구 시합에서 페어 플레이가 무어 그리 대단하랴 싶지만, 그게 그렇지 않다. 신사가 야만적으로 경기하는 것이 럭비라면, 야만인이 신사적으로 경기하는 것이 축구란다. 그래서 더러는 페널티킥을 쉽게 막으라고 키퍼 정면으로 공을 차고, 골인이 돼도 득점으로 치지 말라고 외친 '신사'도 있었단다. 그 신사도를 야만으로 타락시킨 원흉이 돈과 정치였다. 우루과이의 작가 갈레아노의 표현을 빌리면 74년 '잔꾀'로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을 차지한 아벨란제는 "나는 축구라는 상품을 팔러 왔다"고 거침없이 내뱉었다. 그의 막역한 친구 사마란치 역시 비슷한 수법으로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돈독을 퍼뜨렸다. 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아디다스는 지단과 우승컵을 치켜들었으나, 나이키는 2위의 브라질 호나우두와의 시무룩한 사진 촬영으로 본전 계산을 끝내야 했다. 선수들은 공이 아닌 돈을 따라다니고, 그래서 그들은 선수 아닌 '구단 직원'이 돼버렸다.

'빵과 서커스'는 로마의 풍자 시인 유베날리스의 야유다. 빵 대신 서커스를 내민 때도 많았다. 서커스 때문에 정치에의 관심을 버려서는 안된다는 시인의 경고가 유효하다면, 축구에 묻혀 정치를 잊어서는 안된다는 나의 강박관념도 유효하다. 포드 대통령이 저지른 무모한 결정들에 전임자 존슨은 "그는 헬멧도 없이 축구를 너무 많이 했다"고 비꼬았다. 미식축구에서 헬멧이 필수의 생명보호 장비이듯이 정치에도 헬멧이 필요하다는 그의 훈수는 백번 옳다. 우리 주위에도 헬멧 없는 정치와 헬멧 없는 정치인이 아주 많다. 영국 신문 가디언은 "어떤 사람들은 축구를 생사의 문제로 생각한다…나는 그들에게 생사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임을 보증할 수 있다"는 발언을 73년 '올해의 말'로 골랐다. 우리는 축구장 입장권을 사면서 생사보다 더한 애국심을 사며, 그 덤으로 긴장과 흥분이 따라온다. 취재 기자들도 스포츠 기자 아닌 '종군 기자'가 되기 십상이다.

종군기자式 취재해서야

지난 26일 한국과 프랑스의 평가전에서 프랑스의 승리를 빈다고 어기죽거린 녀석이 있다. 잉글랜드와 비김으로써 16강쯤은 떼놓은 당상으로 여기는 '국민 정서'에 프랑스까지 이기면 8강·4강을 넘어 아예 우승 후보(!) 점괘마저 나올 참이고, 이 판에 16강 진출에 실패하면 히딩크와 그 무리를 "십자가에 못박으라"는 여론은 필지의 사실이라는 것이 그의 '매국의 변'이었다. 주여 우리에게서 십자가를 거두시고, 축구는 축구로 끝나게 하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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