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 가르뎅, 佛서 한지공예 극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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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파리=이훈범 특파원] "한지(韓紙)로 장롱을 만들다니 참 놀랍네요."

세계적인 의상 디자이너인 피에르 가르뎅(右)이 우리나라의 한지 공예품을 보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거리 끝에 있는 한적한 공원 속에 자리잡은 '에스파스 피에르 가르뎅'에서 지난 25일까지 열흘간 한국 전통 한지공예전이 열렸다. 이곳은 가르뎅이 자랑하는 문화 전시관이다.

주불 한국 문화·예술인들의 모임인 '네아네'와 한국의 전통한지공예가협회(회장 심화숙)가 공동주관한 이번 전시는 가르뎅의 초청으로 이뤄졌다.

평소 한국 문화에 깊은 관심을 보였던 가르뎅이 하루 대관료가 6천 유로(약 6백60만원)가 넘는 전시관을 거의 무료로 빌려주는 호의를 베풀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행사였다.

80세의 고령임에도 정력적으로 활동하는 가르뎅은 지난 21일 휘하의 디자이너 대여섯명을 이끌고 전시장을 찾았다. 그는 보석함·장롱·병풍·인형 등 한지 공예품의 정교함과 화려함에 매료된 듯 연신 탄성을 질렀다. 전시된 1백여점의 작품들 앞에 일일이 멈춰서서 매만져보고 용도와 제작 방법 등을 물었다.

가르뎅은 특히 한지로 견고한 장롱을 만드는 데 놀라움을 나타냈다. 그는 "한지로 집을 지으면 매우 아름다울 텐데 비가 오는 게 아쉽다"고 말해 장내를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1957년 첫 방한 이후 지금까지 10여차례 한국을 방문했다는 그는 종이인형 작품 앞에서 "과거 내가 느꼈던 한국인들의 정서를 그대로 읽을 수 있다"며 즐거워했다. 그는 한국전쟁 후의 부산 풍경과 서울의 반도호텔 등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장소를 회상하기도 했다.

가르뎅은 다음 약속을 위해 서둘러야 한다는 비서의 채근에도 아랑곳없이 전시장에서 펼쳐진 전통 혼례와 다례(茶禮) 시연을 관심있게 지켜봤다.

그는 자신이 이끄는 극단과 함께 대만과 모스크바·우크라이나 등을 돌며 연극 '크리스탄과 이졸데'를 공연하고 있다. 가르뎅은 "한국 무대에서도 공연하고 싶다. 한국의 전통 음악과 춤 등을 포함한 양국의 문화 교류가 제대로 이뤄졌으면 좋겠다"며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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