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지지 않는 核대결 불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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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카슈미르 문제로 전쟁 직전 위기까지 치달았던 인도-파키스탄 분쟁이 국제사회의 개입으로 일단 진정 국면에 들어갔다. 인도는 앞으로 2개월 간 파키스탄의 행동을 지켜본 뒤 개전(開戰)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파키스탄도 테러 근절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사태 해결과는 거리가 멀고 '연기'됐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

1947년 독립 이래 인도와 파키스탄은 세 차례의 전쟁을 벌였는데 그중 두 차례가 카슈미르 때문이었다. 특히 89년 인도령 잠무 카슈미르에서 이슬람 무장세력이 독립을 요구하는 투쟁을 시작하면서 6만명 이상 희생자를 냈다.

이슬람세력은 지난해 12월 13일 델리 인도 국회 의사당에 총기를 난사한 데 이어 지난 14일 잠무 카슈미르 주둔 인도군 기지에 폭탄테러를 감행, 34명이 사망했다. 인도는 이슬람세력이 파키스탄의 대리전을 맡고 있다면서 파키스탄을 공격할 태세다.

인도는 74년 핵실험에 성공했지만 "핵무기를 제조할 능력은 갖되 개발·보유는 않는다"는 '선택 개방 정책(option open policy)'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97년 인도인민당(BJP)이 정권을 잡은 후 "선택 수단으로 핵무기 사용도 가능하다"는 쪽으로 전환했다. 98년 5월 인도는 핵실험을 전격 실시함으로써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듯 2주 후 파키스탄도 핵실험을 실시했다.

재래식 군사력에선 인도가 파키스탄에 비해 2대1 또는 3대1로 크게 앞선다. 전문가들은 파키스탄이 재래식 전쟁에서 버틸 수 있는 시간이 72시간 정도로 본다.

따라서 핵전쟁으로 발전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파키스탄이 핵무기로 선제공격을 할 가능성도 있다. 핵무기 숫자는 적게는 인도 60~80개, 파키스탄 40~52개에서 많게는 인도 2백~2백50개, 파키스탄 1백50개로 파악된다. 뭄바이·콜카타·카라치·라호르 등 대도시를 공격할 경우 핵무기 한 개로 최대 80만명까지 사망할 수 있다.

핵무기 발사 수단으로는 미사일·전투기·야포를 사용할 수 있지만 특히 미사일이 위협적이다. 인도는 사정거리 2천㎞ 이상, 핵탄두 1t 탑재 가능한 신형 중거리 탄도 미사일 아그니 Ⅱ를 보유하고 있다.파키스탄은 98년 4월 사정거리 1천5백㎞,핵탄두 7백㎏ 탑재 가능한 가우리 Ⅰ을 개발했으며,최근 2천㎞까지 사정거리를 늘린 것(가우리 Ⅱ)으로 전해진다.이밖에 사정거리 1백50㎞ 내외 단거리 미사일로 인도는 프리트비,파키스탄은 샤힌을 보유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양국간에 냉전 시절 미·소간 핫라인처럼 핵전쟁을 피할 수 있는 긴장 완화 메커니즘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최고지도자들이 확실한 리더십을 행사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아탈 비하리 바지파이 인도 총리가 속한 BJP는 과격한 힌두민족주의 세력이 주도권을 잡고 바지파이 총리를 압박하고 있다. 페르베즈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 역시 카슈미르 무장세력을 적극 지원하는 파키스탄 내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을 확실하게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남아시아는 '핵무기로 무장한 발칸반도'라고 부를 만큼 위험한 지역이다. 핵전쟁을 벌여도 승리할 수 있다는 자멸적(自滅的) 망상에 빠진 개인 또는 집단에 의한 '핵 학살'은 인류의 이름으로 반드시 저지해야 한다.

국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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