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농 CEO⑥] 영농후계자 꿈 키우는 23세 이금진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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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금진씨

지금껏 농업 성공사례를 안내했다. '웰메이드 농업 CEO'를 보니 농업은 손 대면 바로 대박날 수 있는 불모지 같기도 하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건 잊지 말아야 할 상식. 그럼에도 영농 후계자의 꿈을 키우는 23세 아가씨가 있다. 충북 진천군의 이금진씨다.(gmjin0128@hanmail.net) 이씨는 2004년 국립한국농업전문학교를 최우등으로 졸업하면서 농림부장관상을 받았다. 2대째 벼농사를 짓고 있는 아버지 이호영(49) 씨와 3만 5000여평의 논을 일구고 있다. 이 중 자가 경작지는 1만평 정도, 주위의 신망 덕에 남의 땅을 얻어 경작하고 있는 셈이다.

청주에서 여자상업고를 졸업하곤 학교 서무실에서 2년간 일했다. 농업전문학교가 있다는 소식을 접한 건 그때였다. 2001년 입학했을 때 같은 학년에 남학생은 210명, 여학생은 11명이었다.

3년 과정의 농업학교에서 2학년생은 실습을 나간다. 해외로도 가는데 이씨는 캐나다 유기농 채소 재배지에 11개월간 있었다. 시설과 규모는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북미 대륙이라면 대규모 기계식 경작을 떠올리겠지만 채소는 손이 많이 가서 그렇게 할 수 없다. 다른 점이라면 직접 납품. 식당이나 매장 등에서 주문을 하면 그날 바로 수확해 공급하는 것이었다.

남들은 약용작물이다 특용작물이다 하지만 할아버지 대부터 짓던 벼농사였다.

"여건이 어렵지만 쌀은 해볼만 하다는 생각이에요. 중국서도 값싼 쌀이 들어오고 있지만 중국은 물부족이 심한 곳이에요. 우리도 장기적으로 수출에 눈 돌리게 될 겁니다."

방앗간을 만들자고 아버지께 줄기차게 건의했다. 농업학교를 졸업하면서 만든 방앗간으로 지금은 소비자들이 주문하면 바로 찧어 배달하는 장양쌀로 승부하고 있다.

"경작도 중요하지만 저장도 중요해요. 그래서 방앗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먹기 전에 바로 찧은 쌀은 물기가 많아서 더 윤기가 돌고 맛있거든요."

▶ 이금진·아버지 이호영씨

솔직히 아직 매출액에는 큰 차이가 없다. 쌀이라 더욱 그렇다. 가뜩이나 집에서 밥들을 적게 먹기 때문이다. 인터넷 쇼핑몰도 만들어 봤지만 검색을 해보면 바로 알 수 있듯 인터넷상 농산물 직거래 쇼핑몰은 '겁나게 많다'.

"그래도 쌀은 계속할만 하다는 생각이에요. 먹거리는 늘 필요하쟎아요."

20대 초반의 이 아가씨, 제법 의젓하다.

아버지 이호영씨가 거든다.

"딸이면 시집이나 가랬을 거 같죠? 전 좀 틀려요. 돌연변인가."

다들 자녀를 도회로 보내려 하는데 이렇게 붙잡아둬도 되나.

"어떤 부모는 일하는 것 보다는 편안하게 사는게 좋다고들 하지만 일하는 기쁨을 알고 자기 체력까지 일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아버지는 좀더 길게 보고 있었다.

"직장 생활하는 친구들도 자기 삶의 기준을 어디다 둬야 할지 고민들 하는데, 평생 일할 수 있는 게 행복이라 생각해요. 농사는 힘 닿는 한 정년이 없쟎아요."

부전녀전. 딸도 한 마디 거든다.

"쌀이 돈이 안 되는 건 맞아요. 돌파구를 찾아야죠. 농협을 통한 대규모 유통이 편하긴 하지만 내가 땀 흘린 게 직접 소비자에게 전달되면 좋겠어요."

장양쌀에는 이호영씨의 얼굴과 핸드폰 번호를 적은 스티커가 붙은 채 유통된다.

"내 쌀엔 내 얼굴, 이름, 전화번호 넣어 잘못이 있으면 언제든 꾸지람을 들을 준비가 돼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직거래망이 확보가 안 됐다. 전체 경작량의 20%만 직거래로 판매하고 있는 실정이다. 개인에게도 판매하지만 식당에 공급하는 것도 쏠쏠하다. 식당밥맛에 감동한 손님들이 그 자리에서 쌀을 사서 차에 싣고 가는 것이다. 직거래로 이씨에게는 농협 거래보다 20kg당 5000원꼴이 더 떨어진다. 시중 유통가로도 경쟁력이 있다.

"벼농사하시는 분들 대부분은 농협의 추곡수매를 이용하고 있어요. 몇 년 후면 없어지는 제도지요. 그 후엔 자기 판로 없으면 정말로 어려워질 거에요."

▶ '장양우리쌀'

이씨네 과제도 직거래망 확보다. 그래서 고품종 쌀을 재배, 영양제에도 돈을 아끼지 않는다. 밥맛이 좋다고 흔히 정평이 난 쌀은 추청, '아끼바레'라고도 부른다. 이런 품종은 재배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단위 면적당 수확량이 적다는 얘기다. 이씨네는 직거래망 확충을 염두에 두고 고품질 쌀 재배에 절반 가량의 역량을 투자하고 있다.

직거래의 장점도 있다. "도정할 때 일반 백미는 72%가 깎여나가요. 현미는 20%만 버리죠. 그런데도 현미가 훨씬 비싸요. 수요가 적기 때문이죠. 직거래 주문받아보면 대부분이 현미를 원하시거든요. 수요가 더 많으면 현미를 싸게 공급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새로 개발된 살 안찌는 쌀이라는 '고아미'도 시험적으로 재배해 볼 계획이에요."

일단 내년도엔 2000평 정도를 유기농 재배에 투자해볼 생각이다.

"10년 뒤엔 우리집안 이름만으로 믿고 밥을 드실 수 있게 되는 게 꿈이에요"

진천군은 "논두렁에 소쿠리 가져다 미꾸라지 떠와 매운탕 끓여드릴까도 싶었지만 입에 맞으실까 몰라서"라는 곳이다.

"쌀 파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에게 농업에 대해, 농촌에 대해 알리고 싶어요. 장기적으론 어린이.외국인 대상의 벼농사 팜스테이도 생각하고 있고요."

처음부터 가졌던 의구심. 채소나 원예도 아니고, 여성이 벼농사? 이쯤에서 이 의아함이 풀렸다.

"쌀포장지는 다 칙칙하죠? 택배할 때 잘 안 찢어지면서도 보기 좋은 디자인을 고민중이에요. 볏짚 처럼 수확하고 남은 것들을 이용했으면 하는 바램도 있고요. 쌀겨를 이용한 미용용품, 밥 외에 새로운 요리 개발은 어떨까요?"

진천=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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