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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세계文學史 30년 등정 '조동일 루트' 완성되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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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한국문학통사』가 대산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프랑스 파야르 출판사에서 최근 출간됐다.

조동일 교수와 다니엘 부셰(73)전 파리7대학 동양학부장이 17년간 공동 작업을 해 한 권으로 축약·번역했다.

세계 각국의 문학사를 펴낸 저명 출판사에서 출간됨으로써 우리 문학의 세계적 위상을 드러내려 한 조교수의 원래 의도에도 부합하게 됐다.

또 조교수가 총 다섯 권인 원저를 외국인들에게 맞게 축약하고 이를 부셰가 번역한 뒤 다시 원저자가 감수하는 방식으로 작업하는, 가장 정통적인 번역 방법을 썼다.

"태산같은 피로가 밀려오는 느낌이었습니다."

주체적 시각과 실증적 분석의 한국문학사 연구를 통해 한국문학의 위상을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린 서울대 국문과 조동일(62)교수.

그가 지난 9일 『세계문학사의 전개』의 완성본 원고를 출판사에 넘기면서 '한국문학의 위상 재정립과 그를 통한 세계문학사 서술'이라는 방대한 연구를 일단락지었다. 첫 저작인 『신소설의 문학사적 성격』을 낸 1973년부터 도도한 여정이 시작됐으니 꼭 30년 만의 일이다. 책은 다음달 초 5백쪽짜리 한 권으로 출간된다.

조교수는 "등산으로 비유하면 한 봉우리의 정상에 서게 된 것"이라며 "이제 하산길을 준비하고 있다"고 소감을 말했다.

조교수의 세계문학사는 한국문학사 연구에서 얻은 시대구분과 가설 등을 동아시아에서 제3세계, 나아가 전세계로 확대해 문학사 서술의 보편적 모델을 만든 것이다.

이는 "한국학을 바탕으로 한 학문만이 세계를 포괄한 보편이론을 내놓을 수 있다"는 그의 '우리 학문의 길'을 스스로 입증한 것이다. 한국에서 학문적 주체성을 표방하는 학자가 내놓은 수준으로 가장 방대한 작업인 셈이다.

이런 결과는 81~89년 여섯 권으로 완간한 『한국문학통사』에서 이미 예견됐다. 현재 여러 대학 국문학과의 교과서로 쓰이는 이 책은 한국문학사의 신경지를 연 독보적 저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은 "한국 근대문학은 고전문학과 단절된 채 서구문학의 이식으로 이뤄졌다"는 일반적 인식을 수많은 실증적 사례의 발굴·제시와 일관된 방법론으로 극복했다. 다시 말해 한국문학은 근대 문학을 독자적으로 이룰 역량이 없었다는 패배의식과 식민주의야말로 서구 근대 문학관에 경도된 잘못된 시각임을 명쾌히 비판해 낸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 문학은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았다.

"몽고 침략기 이후부터 임진왜란 전까지가 우리 역사상의 전성기였어요. 문학적 성과는 당시 세계 최대였죠. 문자해독률, 서적 출간수, 식자층 확대, 국가 시책에 대한 철학적 논의 등에서 볼 때 단일 민족국가 차원에서 따라올 나라가 없었어요. 이후에도 김만중의 『구운몽』과 『사씨남정기』를 보세요. 사건의 전개과정과 묘사의 치밀성 등이 굉장히 앞서 있지요."

서구문학이 세계문학사의 중심을 차지한 것은 겨우 근대 이후이니, 조교수의 연구는 중세에 찬란한 전통을 갖고 있는 우리문학과 비서구권 문학이 세계문학에 큰 기여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나아갔다.

이 자신감을 바탕으로 세계문학에 관해 쓴 책이 『한국문학과 세계문학』 『세계 소설사의 전개』 등 아홉 권이었다. 이번에 탈고한 『세계문학사의 전개』는 이 작업의 완성을 의미한다.

그는 "이 책은 전체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설계도"라며 "유럽문명권의 우월을 나타내는 제1세계 세계문학사와 당파성에 입각해 일부만 부각시킨 구소련 등 제2세계의 세계문학사를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비판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그의 세계문학사에선 문명권 문학이 태동한 중세시대가 중심축으로 등장한다. 고작 몇 백년의 근대 문학사, 즉 정치·경제 대국의 문학 위주로 편제됐으며 그마저도 진보를 도식화한 헤겔의 역사철학에 바탕한 문학사에 대한 강한 비판인 것이다. 근대의 모순을 넘어설 문학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아프리카·아시아 등 제 3세계에서 나온다는 희망찬 전망으로 끝을 맺는다.

"끝까지 선수로만 뛴다"는 일념 아래 연구에만 매진한 조교수였기에 이런 방대한 작업이 결실을 보게 됐다. 실제로 이 책을 내기까지 그는 38종의 기존 세계문학사를 섭렵한 것을 비롯, 한국어·영어·불어·독어·중국어·일어 6개 국어로 수많은 책을 읽었다. 읽은 책 수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군포에 있는 60평 아파트의 절반이 책으로 차있다"고 설명한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조교수는 "2년 뒤 『한국문학통사』를 개고하면 정년퇴임이다. 퇴임 후에는 휴식을 보람으로 삼고자 한다"고 말했다. 더 이상 눈이 아파 책을 읽기 힘들고, 더 나가면 건강을 해치고 그러면 작업도 할 수 없기 때문이라 한다.

우리 시각을 통해 보편성을 이끌어낸 조교수의 한국문학사와 세계문학사 완성은 한 개인의 위업일 뿐만 아니라 국문학자를 포함해 학문적 주체성을 구현하고자 하는 학자들에게 엄청난 용기와 자극이 되는 결과다. 조교수로 하여 이제 우리도 인문학적 독립운동의 한 고지를 점령한 것이다.

우상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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