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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납토성은 백제 위례성이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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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풍납토성을 백제의 첫 도읍지인 위례성(慰禮城)으로 추정한 공식보고서가 나왔다. 풍납토성에 대한 발굴조사 업무를 맡아온 문화재청 산하 문화재연구소(소장 조유전)는 최근 발간한 『풍납토성 동벽(東壁)발굴조사보고서』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이번 보고서는 1999년 풍납토성의 동쪽 성벽 두 곳을 단면으로 잘라내 조사한 결과를 최종 정리한 것이다.

연구소는 보고서에서 풍납토성이 AD 1세기를 전후해 만들어졌으며, 그 규모도 토성(土城)으로는 국내 최대인 점 등으로 미뤄 위례성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밝혔다. 토성이 만들어진 시기에 대한 이같은 조사결과는 지금까지 AD 3세기 무렵으로 추정됐던 것보다 훨씬 빠른 시기여서 주목된다.

이같은 결과에 따를 경우 풍납토성은 유력한 위례성 후보로 추정돼온 몽촌토성보다 앞선 시기에, 더 큰 규모로 만들어진 토성이 된다. 따라서 몽촌토성보다 풍납토성이 한성(漢城)백제(493년 공주로 옮기기 이전 서울에 수도를 정했던 초기 백제)의 왕성(王城), 즉 위례성일 가능성이 더 큰 셈이다.

또 풍납토성과 같은 대형 토성이 1세기에 만들어졌다고 볼 경우 지금까지 4세기 전후로 추정돼온 백제의 고대국가 형성 시기도 2백년 정도 앞당겨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조사에서 최종 확인된 풍납토성의 성벽은 아래쪽 폭 43m, 높이 11m의 초대형. 성벽의 총둘레는 3.5㎞인데, 이 정도의 성을 축조할 세력이라면 충분히 고대국가의 형태를 띠고 있었을 것이다.

연구소가 풍납토성의 축조연대를 1세기 무렵으로 보는 근거는 크게 세가지다. 첫째는 성벽을 쌓는 구조물로 사용된 목재 등에 대한 과학적 절대연대 측정치다. 방사성 탄소연대 측정 등을 한 결과 대개 1~2세기의 것들로 확인됐다. 따라서 토성은 늦어도 AD 200년 이전에 완공됐다고 할 수 있다.

둘째 근거는 출토 유물. 단면으로 잘라 분석한 결과 성벽은 흙을 몇차례 덧붙여 만든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먼저 만들어진 가운데 토루(土壘·흙구조물)와 덧붙인 토루 사이에서 주로 토기들이 많이 나왔는데, 대부분 BC 1세기~AD 2세기에 걸쳐 나타나는 풍납동식 무문토기들이다.

셋째로 성벽 내부에 대한 발굴조사 결과와 비교해 봐도 마찬가지다. 성벽 내부 주거지가 23평이나 되는 큰 규모고, 여기서 출토된 초석·전돌·기와 등을 보더라도 토성을 만들 만한 인력과 기술을 충분히 갖춘 백제인들이 모여살았으리라는 것이다.

문화재연구소 신창수 유적조사연구실장은 "이번 조사는 성벽에 대한 최초의 발굴 조사로 의미가 크다. 축조연대나 규모가 명확해지면서 풍납토성이 위례성일 가능성도 매우 커졌다"면서 "앞으로 보다 많은 조사와 발굴이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해 풍납토성 일대를 사적으로 지정하고 토지를 매입하는 등 장기적인 마스터플랜이 빨리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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