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마라톤 4자회담'] 국회 정상화 합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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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일 천정배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이부영 열린우리당 의장, 김덕룡 한나라당 원내대표(왼쪽부터)가 국회 정상화를 위한 회담에 앞서 서로 인사하고 있다.[김형수 기자]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 여야가 결국 한발씩 양보하는 차선의 타협책을 마련했다. 일단 윈윈 게임이란 평가가 나온다. 양당 대표와 원내대표가 참여하는 '4인회담'이라는 새로운 정치실험이 거둔 성과다. 21일 저녁 회담 결과가 발표되자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에선 모두 "그 정도면 됐다"며 반기는 분위기가 퍼졌다. 14일째 이어지던 한나라당의 법사위 점거농성도 이날 밤 끝났다. 그러나 합의문의 문구 해석을 놓고 여야의 생각이 다른 데다 여당 강경그룹에선 '밀실 야합'이라고 반발하고 있어 불씨는 남아 있다.

◆ 아침부터 저녁까지 마라톤 협상=회담장인 국회 귀빈식당 주변엔 오후 7시30분쯤 참석자들이 합의문을 쓰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아연 긴장감이 돌았다. 오후 8시10분 회담장의 문이 열렸다. 진을 치고 있던 100여명의 취재진이 쏟아져 들어갔다. 열린우리당 이부영 의장과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환한 표정으로 악수를 하며 협상 성사를 알렸다. 이 의장이 "많은 노력을 했고 서로의 입장을 이해한 속에 합의를 이뤄 기쁘다. 내일부터 국회는 정상화된다"고 선언하자 몰려온 10여명의 양당 의원들이 일제히 박수를 쳤다. 박 대표는 회담 결과에 만족하느냐는 질문에 "어떻게든 국회를 정상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만 했다. 열린우리당 천정배 원내대표와 한나라당 김덕룡 원내대표가 상기된 목소리로 4개 항의 합의사항을 번갈아 읽어나갔다. 회담 뒤 김 원내대표는 "여당이 힘으로 밀어붙이지 않겠다는 점을 야당에 확실히 납득시켜줬다"며 만족스러워했다.

협상이 처음부터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오전 10시부터 배석자도 없이 담판을 시작한 네 사람은 1시간45분 만에 별 소득없이 1차 회담을 끝냈다. 회담장을 빠져나오는 참석자들의 표정은 무거워보였다. 이 의장은 "서로 나라와 국민을 걱정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대표회담이 더 일찍 열렸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고 했고, 박 대표는 "아무 것도 결정된 것은 없지만 여야가 자기 입장을 충분히 전달했다"고 평가했다. 오후 회담은 예정보다 1시간 늦어진 4시30분부터 진행됐다. 박 대표와 김 원내대표가 한나라당 타협안을 조율하느라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3시간 가까운 오후의 2차 회담이 끝나지 않자 주변에선 회담이 결렬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회담 도중 간간이 참석자들의 고성이 문 밖으로 새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최대 쟁점이던 '연내 처리'와 '합의처리'부분에서 양측이 서로 양보하는 자세를 발휘해 극적으로 합의가 이뤄졌다. 국회 파행 장기화에 대한 비난여론이 양측이 타협하지 않을 수 없는 압박 요인이었다.

◆ 여야의 손익계산=열린우리당은 이번 국회 정상화가 민생경제와 국민통합이라는 내년 국정기조에 큰 도움이 된다고 보고 있다. 또 완고한 자세를 보이던 박 대표를 협상 테이블로 이끌어낸 것 자체가 짭짤한 성과라는 평가다. 발등에 떨어진 불인 내년도 예산안과 이라크 파병 연장 동의안에서 한나라당의 협조를 약속받은 것도 여당을 기분좋게 하고 있다.

반면 한나라당은 여당의 4대 입법 강행처리를 좌절시켰다는 점에서 이번 회담의 의의를 찾고 있다. 특히 국가보안법 문제를 4인회담의 틀로 가져오면서 사실상 보안법 폐지는 물건너간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게 한나라당의 생각이다. 당내에선 "박 대표의 '고집'이 결실을 맺었다"는 말이 나온다. 이 때문에 보안법 폐지의 연내 처리를 주장하며 국회에서 농성 중인 열린우리당 강경파는 회담 결과에 대해 "연내 처리보다 합의 처리에 무게가 실린 것 아니냐"며 강한 불만을 터뜨려 향후 당내 분란을 예고하고 있다.

김정하.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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