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철의 중국 산책] 중국신문이 중국정부를 대변하는가

중앙일보

입력

"여러분, 혹시 알고 계신 중국신문 있습니까."
아마 이렇게 물으면 십중팔구 '인민일보'란 답이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인민일보는 중국공산당 기관지이지요.
여기 1면에 가끔 실리는 사설(중국에선 사론이라고 부르지요)은
그 다음날 모든 중국신문에 실립니다.
사설의 집필자는 본명인지 필명인지 구분 안가는 게 많기도 하구요.
한때 마오쩌둥 본인이 사설을 쓰기도 했다고 할 만큼
인민일보 사설은 중요합니다.
왜냐. 중국의 공식 입장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최근 한국 언론에 자주 인용되는 신문 둘이 생겼습니다.
인민일보 자매지인 환구시보(環球時報)와
신화사 자매지인 국제선구도보(國際先驅導報)입니다.
이 두 신문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전후해
한국에서 반중 정서가 일 때 가장 민감하게 반응했던 곳입니다.
외국 뉴스를 전문으로 다루다 보니 우리와 부딪치는 일도 많습니다.

이 두 신문이 다시 천안함 사건과 한국전쟁을 맞아
한국 언론에 회자가 되면서 그야말로 한국에서 '뜨고' 있습니다.
환구시보의 경우엔 지난 5월26일
'외부 의혹에 진지하게 대응하는 것이 북한에 유리해'라는
사설을 게재해 북한을 비난, 우리를 깜짝 놀라게 했지요.

그러나 6월 8일자 사설에선
한미가 서해상에서 계획중인 합동해상훈련을 겨냥해
'한국은...미국을 끌어들여 긴장을 악화시키지 말아야 한다'고
거의 협박성 글을 싣기도 했습니다.

한국전쟁을 맞아선
환구시보 영문판 글로벌타임스가
화동(華東)사범대 역사학과 선즈화(沈志華)교수의 말을 인용해
북한의 남침설을 거론하더니
24일엔
국제선구도보가 전쟁의 기원과 관련해
'북한군이 38선을 넘어' 운운하며 남침설을 기정사실화 하는 보도를 했구요.

이같은 보도는 매번 한국언론에 대서 특필됐습니다.
중국의 기존 입장과 배치돼 눈길을 끌 뿐 아니라
중국의 언론이 모두 중국당국의 통제를 받고 있는 상황이어서
중국정부의 변화된 입장을 시사하는 것이 아니냐는 판단에서였겠지요.

특히 환구시보는 인민일보의 자매지이고,
국제선구보도는 중국관영통신사 신화사의 자매지인데
이만큼 더 중국정부의 입장을 잘 반영하는 신문이 있겠느냐는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넌센스'입니다.
환구시보나 국제선구보도 모두 중국정부의 입장을 대변하지 않습니다.

국제선구보도의 '북한 남침설' 기사가 한국 언론에 보도된 뒤
이를 게재한 기사가 인터넷에서 모두 삭제된 데서 잘 알 수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요.
아직 중국의 모든 언론이 중국 당국의 손아귀 안에 있는 건 맞습니다.
그러나 모든 기사가 일일이 검열을 받지는 않습니다.

각 신문의 자율성이 예전에 비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는 것이지요.
지난해 봄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
"과거에 할 수 없는 일을 이젠 할 수 있다"고 말하던 한 중국 언론인의 말이
생각납니다.

현재 중국의 각 언론사는 완전한 자율성을 확보하진 못했지만
예전에 비해 크게 늘어난 공간을 이용해
각 언론사의 판단에 맞춰, 또 독자들의 수요에 맞춰 기사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환구시보나 국제선구보도는
중국 사회의 일정한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으나
그런 기사가 중국정부의 입장을 대변한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아닌 셈입니다.

한국 언론이 이같은 중국언론의 변화를 감안해 인용하는 게 맞을 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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