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그기 몰고온 이웅평대령 별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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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미그기 귀순용사 이웅평(雄平) 공군 대령이 4일 오후 경기도 분당 국군수도통합병원에서 간기능부전증으로 별세했다. 48세. 북한 공군 대위였던 대령은 1983년 2월 25일 구 소련제 미그-19 전투기를 몰고 군사분계선을 넘어 귀순했다. 북한 공군기를 몰고 귀순하기로는 50년 이후 여섯번째.

그가 처음 몰고 온 미그-19는 당시 북한 공군의 주력기여서 우리 군당국이 북한 공군의 전력을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귀순 후 한자와 영어를 익히고, 경제학과 정치학을 1년간 개인교습 받는 등 남한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한 그는 공군 소령으로 임관돼 정보부대에서 북한정보를 분석하는 업무를 담당했다.

뒤이어 공군대학 교수로 자리를 옮겨 안보정책을 강의하다가 96년 대령으로 진급했으며 지난해부터 공군대학 안보정책 처장으로 근무해 왔다. 미남형에 키가 큰 그는 박선영(39)씨와 84년 결혼해 딸 다빈(16)양과 아들 중규(15)군을 얻는 등 행복한 가정을 꾸렸다.

그러나 그의 행복은 길지 않았다. 호방한 성격의 그는 남에게 뒤지지 않기 위해 몸을 아끼지 않고 열심히 일하다가 97년 10월 공군대학 사무실에서 간경화로 쓰러졌다. 98년 간이식 수술을 받고 회생해 투병일기 '기수를 삶으로 돌려라'를 펴내기도 했으나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끝내 숨을 거뒀다.

대령은 저서를 낸 뒤 "인생의 3분의 1을 서울에서 살았지만 아직도 남한 사회에 완전히 융화되지 않아 물위에 뜬 기름같은 느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대령의 장례식은 6일 오전 9시 공군대학 총장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장지는 대전국립묘지.

김민석 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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