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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제2부 薔薇戰爭제3장 龍虎相搏 :아내를 희생양으로 삼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앞으로 나아가 장인 이홍에게 몸을 의탁하여도 죽을 것이고, 뒤로 물러가 청해진에 망명해 있는 김우징에게 돌아간다 하더라도 의심을 받아 죽을 것이다. 그러니 어찌할 것인가.

그 순간.

물끄러미 촛불을 바라보면서 상념에 잠겨있던 김양에게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이 사면초가의 궁지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김우징으로부터 의심을 받을 수 있는 화근을 아예 제거하는 일이다. 김우징이 김양을 의심하는 것은 그가 이홍의 사위라는 사실이며, 그 때문에 환란에서도 살아남았으리라고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의심암귀(疑心暗鬼).

옛말에 이르기를 의심하는 마음이 있으면 있지도 않은 귀신을 낳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따라서 의심하는 마음이 있으면 무서운 망상이 일어나 올바른 판단을 그르치게 된다는 말이다.

그리하여.

김양은 자신의 무릎을 내리치면서 생각했다. 한나라의 고조 유방으로부터 반역의 의심을 받은 한신은 자신을 죽이기 위해서 입궐하라는 명령에 불안을 느끼자 그의 근신은 이렇게 충고하지 않았던가.

"종리매의 목을 쳐서 가져가신다면 폐하께서도 노여움을 풀고 기뻐하실 것입니다."

근신의 말을 듣고 한신은 자신에 대한 불신을 없애기 위해서 종리매의 목을 가지고 유방을 배알하지 않았던가.

그뿐인가. 진나라의 시황제를 살해하려던 형가(荊軻)는 시황제의 신임을 얻기 위해서 깊은 생각 끝에 진나라의 장군으로 연나라에 망명해 있던 번어기의 목을 잘라 그것을 선물로 삼아 시황제를 만날 수 있지 않았던가.

그렇다. 김양은 고심 끝에 결론을 내렸다.

백일을 두고 복수를 맹세하였으므로 이대로 조정으로 돌아가 장인에게 용서를 빌고 구차하게 생명을 연명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오직 하나. 날이 밝기 전에 백률사를 도망쳐 청해진으로 탈출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그 전에 할 일이 있다. 한신이 유방의 신임을 얻기 위해 종리매의 목을 베고, 형가가 시황제의 신임을 얻기 위해 번어기의 목을 자르듯 내게도 김우징의 의심을 벗어나버리기 위해서 반드시 가져가야 할 목숨이 있다.

그것은.

바람도 없는데 깜빡이며 타오르고 있는 촛불을 바라보면서 김양은 생각하고 또 생각하였다.

그것은 바로 저곳에서 잠들어 있는 아내의 목숨인 것이다. 아내 사보는 반적 이홍의 딸. 김양 자신이 이홍과 무관한 관계임을 입증하는 유일한 증거는 아내 사보와 인연을 끊는 일인 것이다. 내가 만약 아내 사보의 목을 베어 그 목을 갖고 김우징에게 갈 수 있다면 김우징은 자신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생각이 여기에까지 미치자 김양은 타오르는 촛불로 가까이 다가가 밑둥에 칼로 금을 그었다. 그러고 나서 망설이지 않고 잠든 아내를 흔들어 깨웠다. 밤은 깊고 별빛조차 없는 어둠뿐이었으며 방안에는 오직 촛불 하나만 어둠을 밝고 있을 뿐이었다.

"부인께서 하신 말씀 곰곰이 생각해 보았소이다. 장인께오서 한시 빨리 조정으로 들어와 서로 힘을 합쳐서 경국의 대업을 도모하자는 말씀, 밤새도록 생각해 보았소이다. 그러나 심사숙고해본 결과 그렇게 할 수는 없다고 결론을 내렸소이다. 뿐만 아니라 날이 밝기 전에 나는 이 백률사를 떠나 다시 숨기로 결심하였소이다. 이미 장인어른의 가는 길과 내가 가는 길은 서로 달라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고 말았소이다."

사보부인은 묵묵히 김양이 하는 말을 들었다. 애초부터 사보부인은 김양이 자신을 사랑하고 있지 않음을 잘 알고 있었다. 남편이 사랑했던 여인은 따로 있음이었다.

김양이 마음 속으로 사랑하고 있던 여인은 정명(貞明)으로 바로 김양의 원수인 김명의 누이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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