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질서'통해 신의 마음을 읽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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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물질적 우주에서 생명이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가? 자신이 자신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이 의식이라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요즘 철학은 더 이상 이런 질문에 흥미를 갖지 않는다.

고대 자연철학 이후 철학적 정신을 사로잡아왔던 이런 주제들은 오늘날에 와서 빛바랜 유물처럼 되어 버렸고 영화와 같은 '일상적 잡담에서의 의미 찾기'가 이제 철학의 본령인양 되어 가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거대 담론들은 사라져 버렸는가? 그렇지 않다. 그것은 철학의 밖에서 '복잡성의 과학'(science of complexity)이라는 이름으로 의연히 부활하고 있다.

최근 복잡성의 과학을 대표하는 저서 중의 하나인 스튜어트 카우프만의 『At home in the universe』가 『혼돈의 가장자리』라는 이름으로 번역·출간되었다.

아마존의 서평란에서 한 독자는 "나는 이 책을 통해서 신을 흘낏 본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쓰고 있다. 필자의 느낌도 바로 이러했다. 빈약한 나의 상상력을 초월하는 장엄한 자연의 깊이를 흘낏 보았다는 그런 울림 말이다. 카우프만 자신이 찾고 있던 것도 바로 그것이었을 것이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는 항상 특수하거나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 질서를 원했습니다. 나는 질서가 일반적이고, 전형적이고, 불가피하고, 마치 신처럼 존엄한 무엇이기를 원했습니다. 바로 그겁니다. 그것은 신의 마음입니다." 이 신의 마음을 그는 "저절로 출현하는 질서"(order for free)라고 불렀다.

다윈은 설계자 없이도 자연계에 어떻게 질서가 출현할 수 있는가를 보여줌으로써 자연의 해석에 새로운 길을 열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한 중심개념이 '자연선택'이다. 그러나 자연선택만이 작용했다고 한다면 자연은 박테리아 이상의 생명체는 진화시킬 수 없었을 것이다.

일단 박테리아적 구성이라는 기존질서가 정착하면 자연선택은 그 범주 안에서 적합자를 선별할 뿐이기 때문에 그 틀을 깨는 일체의 변이들은 도태되고 만다. 캄브리아기의 대번성-다세포 생명체의 등장과 같은 기존 생명체의 패러다임을 깨는 혁명적 변혁들은 자연선택에 의해 설명될 수 없다. 그것은 자연의 보다 심원한 창조성의 표현이다.

말하자면 자연선택은 질서의 충분조건에 지나지 않으며 생명의 진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의 필요조건이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저절로 출현하는 질서다. 카우프만이 찾고 있던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카우프만은 우선 1백개의 전구의 간단한 연결망을 만들어서 저절로 출현하는 질서의 발현을 실험했다. 1백개의 전구들은 켜지거나, 꺼지거나 두가지 상태 중 하나를 취할 수 있기 때문에 연결망이 취할 수 있는 가능한 상태의 수는2100또는1030이다.

이 가운데 어떤 특정한 상태들만 재현된다는 것은 확률적으로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실험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1030개의 상태 가운데 단지 네가지 상태만이 발현된 것이다. 이것은 수정란의 형태발현의 수수께끼에 대한 답일지 모른다. 인간의 수정란 속의 4만여개 유전자는 상호 연결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으며 서로 상대를 켜고, 끔으로써 2백56가지의 상이한 세포형태를 발현시키는 것이 아닐까?

요컨대 질서는 '저절로' 만들어진다. 질서를 만들어내는데 무슨 치밀한 계획 같은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필요한 것은 대상들간의 연결망(네트워크)을 만들어주는 것뿐이다. 연결망이 질서를 만들어낸다는 그의 주장은 인터넷 환경에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그렇게 낯설게 들리지 않는다.

인터넷을 통해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질서들이 속속 출현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신의 마음이란 바로 이 네트워크를 말하는 것인가? 참고로 이 책에 나오는 몇가지 실험을 실제 해볼 수 있는 사이트 주소는 http://users.ox.ac.uk/~quee0818/complexity/complexity.html이다.

조용현

<인제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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