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칼럼] ‘신의 손, 앙리’ 언제까지 되풀이할 건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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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의 루이스 파비아노 선수가 20일 코트디부아르와의 경기에서 심판이 못 봐 골로 연결된 핸드볼 반칙을 하는 장면. Getty Images/멀티비츠

월드컵 심판의 자질론이 불거지고 있다. 지난 18일 남아공 월드컵의 미국-슬로베니아 경기에서 말리의 토먼 쿨리벌리 심판은 미국 팀의 완벽한 골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선수와 감독, 축구팬들에게 어떻게 그런 끔찍한 결정을 내렸는지 해명조차 없었다.

심판이 한 번 결정을 내리면 아무리 지독한 오심(誤審)이어도 되물릴 수 없다. 축구팬들은 프랑스의 수퍼스타 티에리 앙리가 이번 월드컵 예선에서 아일랜드를 상대로 핸드볼 반칙을 통해 넣은 골이 인정된 장면을 두고두고 기억할 것이다.

축구 심판의 오심을 줄이기 위한 개혁이 시급하다. 국가대표 경기나 국내 리그를 가리지 않고 심판 실수가 점점 늘면서 경기를 망치고 있기 때문이다. 월드컵 같은 글로벌 스포츠 제전도 마찬가지다. 심판의 잘못된 판정으로 승자와 패자가 갈리기 때문에 오심이 잦아지면 축구의 정통성마저 훼손받게 된다. 특히 뉴미디어의 활성화로 경기 장면이 세계 도처에 퍼지면서 오심 논란은 갈수록 대중적 관심사가 되고 있다.

사실 오심 논란은 ‘축구의 미래’와 직결돼 있다. 심판의 부주의나 무능력 때문에 오심이 나오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경기가 점점 빨라지고 선수들 기량이 높아지면서 오심이 나온다. 나아가 21세기에 19세기 규칙을 적용하는 것도 문제다.

개혁을 위해선 첫째 ‘비디오 증거물’을 활용해야 한다. 부당하게 인정되지 않은 골이나 잘못 내민 레드 카드, 터무니없는 오프사이드 휘슬같이 경기의 향방을 가르는 장면이 나올 때 써먹을 수 있다. 구체적으로 비디오 화면 판독관을 두고 오심을 잡아낸 뒤 이를 주심과 부심에게 알려줄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경기를 치르는 각 팀이 비디오 증거물을 보고 심판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도 생각할 수 있다. 이런 절차가 도입되면 주심이 최초 결정을 번복할 수 있는 명분이 마련된다. 비디오 화면을 판독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지도 않고, 경기 흐름을 방해하지도 않는다. 둘째, 축구공 안에 전자 칩을 넣어 공이 경기장 라인을 벗어났는지 등을 판가름하는 데 이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테니스 대회에서 비슷한 첨단 기술로 라인 시비를 줄였던 점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셋째, ‘2인제 주심’을 도입하는 걸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2명이 넓은 운동장을 반으로 나눠 심판을 보는 것이다. 미국 농구협회는 축구 경기장의 9분의 1 크기인 농구장에 3명의 심판을 두도록 하고 있다. 끝으로 국제축구연맹(FIFA)이나 유럽축구연맹(UEFA)에 스며드는 비밀주의와 무책임 문화를 바꿔야 한다. 다른 스포츠는 행동에 책임을 지지 않는 협회를 용인하지 않는다.

이런 개혁을 포함해 이미 이뤄졌어야 할 많은 조치가 실행되면 심판들이 보다 효율적인 판단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된다. 명백한 오심으로 심판의 권위를 깎아 내리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 위의 다섯 가지 방법을 도입하면 축구 경기의 투명성과 공정함을 높여 결과적으로 경기의 정통성도 살아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심판 스스로 자신이 내린 결정에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 아주 중요한 축구 경기에서 독단적 태도로 판정을 내리면 안 된다. 사람들에게 판정 근거를 설명하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동안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선도적인 축구 전문가들은 개혁 조치 도입을 위해 꾸준히 촉구해 왔다. 네덜란드의 세계적 스트라이커인 마르코 판 바스턴과 독일 출신의 전 FIFA 심판인 마르쿠스 머크 같은 사람들이다. 세상의 수많은 축구팬도 심판의 실수를 줄이는 단호한 개혁을 지지한다. 보수적인 축구계의 구태의연한 통치 방식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갈수록 늘고 있다.

스포츠에서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심판의 실수를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다. 그래서도 안 된다. 그런 실수의 영역까지 떠안았을 때 스포츠의 전통과 전설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축구계의 책임 있는 사람이라면 황당할 뿐더러 충분히 피할 수 있는 오심을 줄이기 위해 대담하게 나서야 한다. 그게 축구의 정통성을 지키는 길이다.

안드레이 마코비츠 라스 렌스만 미국 미시간대 교수 ⓒProject Syndic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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