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평생 처음 불러본 "아버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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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반세기에 걸친 그리움과 한을 풀기엔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다.

1일 오후 5시 북한 금강산지역 온정각. 테이블에 둘러앉은 이산가족 1백쌍은 재회의 기쁨에 울었고,이틀 뒤면 어김없이 찾아올 기약없는 이별의 서러움에 마주잡은 손을 놓지 못했다.

만남은 그 자체가 드라마였다.남측 김외숙(52·여)씨는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인민군에 징집된 아버지 김두환(金斗煥·72)씨를 만나 "아버지"를 부르며 金씨 품에 안겼다.金씨는 "50평생 처음으로 '아버지'를 불러본다"며 "아버지를 기다리던 엄마(1995년 사망)가 슬퍼할까봐 아버지 소식을 묻지도 못했다"고 울먹였다. 이날 상봉장에서는 金씨와 같은 처지의 방북자가 4명이나 됐다.

남측 가족 중 최고령인 안순영(93)할머니는 꿈에도 그리던 둘째 아들 조경주(71)씨의 손을 꼭 잡고는 "내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조씨는 "이렇게 어머니를 만나게 됐으니 효자 노릇을 하게 된 것 같다"고 했으나 아버지와 큰 형이 숨졌다는 얘기를 듣자 그만 흐느꼈다.

한국전쟁 때 소식이 끊긴 큰 아들 이춘식(70)씨를 52년 만에 본 남측의 김분달(89)할머니는 너무 기쁜 나머지 한동안 말문을 열지 못했다.金할머니가 잠시 후 "반갑다, 반갑다. 네가 죽은 줄 알고 20년 동안 제사를 지냈다"고 하자 李씨는 "어머니 큰 아들이 살아있었소"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金할머니는 마침 이날이 생일이어서 만찬 상봉장에서 李씨와 함께 케이크를 자르며 상봉을 기뻐했다.

이번 상봉에서는 남북 유명인사들간 재회도 이뤄져 눈길을 끌었다.

김민하(68)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은 둘째 형 성하(75·전 김일성종합대 교수)씨가 상봉장에 들어서자 두손을 붙잡고 울음을 터뜨렸다. 성하씨는 金부의장과 함께 온 여동생 옥려(61)씨가 오열하자 "코흘리개였는데"라며 회상에 잠기기도 했다.

고려대 경제학과 4학년 때 한국전쟁이 터져 북으로 가게 된 성하씨는 "당 간부를 육성하는 공산대학 등에서 25년간 교수를 한 뒤 요즘은 공업대학 교수로 있다"며 함께 오지 못한 다른 형제들의 근황을 물었다. 그는 동생들이 "형님 못보고는 눈을 감을 수 없다던 어머니가 지난해 4월 돌아가셨다"고 하자 "캐나다에 있는 막내 행자(59)한테서 편지를 받았다"며 눈물을 흘렸다.

남쪽의 이대희(66·순천향병원 검진센터소장)씨는 서울대 의대에 다니다 한국전쟁 때 행방불명된 누나 명분(69)씨를 만났다. 李씨는 "지난해 가을 누나가 보내온 편지를 받고 마음을 놓았었다"며 가족들의 안부를 물었다. 명분씨는 주양자(朱良子·71)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함께 경북여고·서울대 의대를 다닌 단짝. 대희씨가 얘기 도중 "朱씨가 누나에게 안부를 전하더라"고 하자 "아 그래, 양자가 살아있니"라며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명분씨는 평양산원에서 산부인과 과장을 지냈으며,북측 기자들도 이들 남매의 상봉에는 큰 관심을 보였다.

금강산=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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