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폭동 현장엔 평화행진 물결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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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LA 폭동' 10주년을 이틀 앞둔 27일 저녁(현지시간) 플로렌스와 노먼디 애비뉴가 교차하는 로스앤젤레스의 센트럴 번화가. 약탈과 방화가 난무하던 1992년 4월 29일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그때 흑인들은 이곳에서 처음으로 돌을 던졌고, 첫번째 부상자도 여기서 나왔으며 약탈도 여기서 시작됐다. 역사의 현장인 셈이다.

미주 한인 1백년 이민 사상 최대의 비극을 빚은 날이 이틀 앞으로 다가온 이날 오후, 피로 얼룩졌던 이 거리에서 한인 5백명 등 LA 시민 1천여명이 평화 대행진을 벌였다.

그동안 한·흑 갈등은 확실히 줄었다. 한 한인신문의 조사에 따르면 센트럴 소재 한인 상인의 74%가 '타인종 또는 지역사회와의 유대가 전보다 나아졌다'고 답했다.

폭동을 계기로 한인들도 화합을 위해 애를 썼다. 흑인 어린이와 빈민층을 위한 무료교육과 무료 의료시술도 많이 했다. 흑인학교에 장학금도 내고, 소외된 자를 돕겠다며 일부러 흑인 밀집지역 학교에서 교직을 맡은 젊은이들도 여럿 있다. 2000년 1월 18일 흑인 밀집 거주지역인 린우드시와 칼슨시가 '한국의 날'을 선포한 것은 이에 대한 화답이다.

그러나 완전히 상처가 아문 것은 아니다. LA 소재 로욜라 메리마운트 대학 부속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5년 내 폭동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59%가 "그럴 수 있다"고 대답했다. 갈등이 내재돼 있다는 뜻이다. 다만 그 갈등의 대상이 흑인에서 히스패닉계로 바뀌었을 뿐이다.

현재 코리아타운 인구의 51%는 히스패닉이고, 한인은 20%다. 히스패닉의 비중은 앞으로 더 커질 전망이다. 음식점·봉제업이 주업종인 한인들은 이들에게 노동력을 의지하고 있다. 상당수 한인들이 과거 흑인을 깔보던 것처럼 이들을 낮춰본다는 데 문제가 있다.

LA 한인들은 '4·29 폭동'을 코리안 아메리칸의 생일이라고 부른다. 이를 계기로 한단계 성숙해졌다는 뜻이다. 그러나 변화한 환경에서 잉태된 새로운 갈등이 잠재돼 있음을 부인키 어렵다.

◇LA 폭동은=92년 4월 29일 흑인 로드니 킹 집단 구타사건에 연루됐던 백인 경관들에게 무죄평결이 내려진 데 격분한 흑인이 일으킨 폭동. 한인 업소 2천2백여개가 약탈과 방화로 3억5천만달러의 재산피해를 보았다.

로스앤젤레스=신중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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