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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문의 검은 돌 흰 돌] 인천 아시안게임서 바둑 빠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광저우 아시안게임 바둑 종목 남자 부문 단체전은 11월 23~26일 열린다. 대표선수는 6명. 한국기원은 이창호 9단과 이세돌 9단을 대표로 확정하고 나머지 4명을 뽑기 위해 선발전을 치러왔다. 24일부터 최종 단계의 선발전이 진행 중인데 참가 기사는 최철한 9단, 박영훈 9단, 박정환 8단, 조한승 9단, 강동윤 9단, 윤준상 8단 등 6명이다. 이들이 풀 리그를 벌여 4명을 선발한다.

선발전엔 대국료나 상금이 한 푼도 없지만 선수들의 자세는 어떤 대회보다도 치열하다. 젊은 선수들은 “태극마크를 달고 경기한다는 것은 너무 매력적”이라고 말한다. 대표로 나가 금메달을 따면 병역 면제라는 보너스도 있다. 바둑이 스포츠가 되면서 아시안게임은 병역 면제 혜택이 주어진 유일무이한 대회가 되었다. 바둑계 전체는 이들 선수보다 몇 배 큰 기대를 아시안게임에 걸고 있다. 아시안게임을 통해 또 한번의 도약을 이룰 수 있기를 잔뜩 희망하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기대는 한여름 밤의 꿈으로 끝나버릴지 모른다. 다음 아시안게임, 즉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바둑 종목이 제외됐다는 비보(?)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그 소식이 선발전에 나서는 선수들의 마음마저 허전하게 만들고 있다.

중국이 아시안게임에 바둑 종목을 집어넣은 데다 그 다음 아시안게임 개최지가 인천으로 확정됐을 때 바둑계는 쾌재를 불렀다. 중국은 바둑의 원조다. 한국은 세계 최강국이다. 중국이 시작한 것을 한국이 이어받고 여기에 일본이 힘을 보탠다면 바둑은 아시안게임 종목으로 굳어질 수 있다. ‘마인드 스포츠’가 스포츠로 명백하게 자리 매김을 하는 새 시대가 도래하고, 바둑 세계화도 시간 문제다. 그런 식의 기대를 하고 있던 참인데 한국이 그만 ‘바통’을 놓쳐버린 것이다.

깜짝 놀라 수소문해보니 불행 중 다행이랄까. 정부 당국자는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다”고 말한다. “어떤 종목을 넣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와 인천 아시안게임조직위의 몫”이라고 전제하면서도 추가 종목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국자에 따르면 OCA는 아시안게임 종목이 방만하게 늘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올림픽 종목 위주로 치르기로 방침을 정했다고 한다. 올림픽 종목을 기본으로 하고 거기에 아시아라는 지역 특성, 그리고 개최국의 특성 등을 고려해 7, 8개 종목을 추가한다는 것이다.

한국기원과 대한바둑협회는 최근 소원하다. 하지만 이 문제만큼은 힘 있는 한국기원이 앞장서야 할 것으로 보인다. 별도의 기구를 구성해 중국기원·일본기원과도 협의하여 바둑 외교를 적극 펼쳐야 할 시점으로 보인다. 정부 입장에서도 한국 두뇌의 우수성을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무대를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아시안게임에 바둑 종목이 사라지면 바둑 선수는 영영 병역 면제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일례로 병역을 든 것이지만 여파가 어디 그것뿐이랴. 바둑이 아시안게임에 들어가느냐, 마느냐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바둑 자체의 사활을 좌우할 만큼 중요해 보인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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