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리그는 바둑의 ‘프리미어 리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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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서구적 시장원리를 고스란히 받아들여 갑·을·병 3개 리그 체제로 발전한 중국바둑리그는 조건만 맞으면 선수의 국적을 묻지 않는다. 사진은 시안 팀의 주장 최철한 9단(왼쪽)이 상하이 팀 주장 창하오 9단과 대결하는 장면. [사이버오로 제공]

중국리그는 메이저리그 격인 갑조리그와 마이너 격의 을조리그 외에 병조리그까지 있다. 갑조는 12개 팀이 있다. 각 팀은 연간 22라운드를 치러 하위 2개 팀(11, 12위)이 을조로 쫓겨난다. 대신 을조 1, 2위 팀이 갑조로 올라온다. 영국 축구인 프리미어 리그를 본뜬 제도다. 선수 선발은 연고지를 중시하고 한번 뽑으면 고정된다. 그러나 많은 비용을 들여 스카우트나 트레이드가 이뤄지기도 한다. 한국 은 물론 일본과 대만 기사에게도 문호가 열려 있다. 선수들의 몸값은 10대1까지 차이가 난다(한국리그는 매년 팀의 선수를 새로 정하고 대국료는 모두 같다. 당연히 트레이드 등은 없으며 선수 선발에 제약이 많다).

중국리그는 이처럼 철저히 시장경제적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고 팀에 전권이 주어진다. 중국기원은 조용한 중재자로 교통정리만 맡는다. 올해 중국리그의 정확한 명칭은 ‘긴리(金立)휴대전화배 중국바둑갑조리그’다. 긴리라는 전자회사가 메인 스폰서인 것이다.

한국기사는 중국리그 초창기엔 굉장한 인기였다. 조훈현 9단, 서봉수 9단, 이창호 9단, 유창혁 9단 등 4인방이 모두 스카우트됐다. 목진석 9단은 명문 충칭 팀에서 우승을 맛보기도 했다. 2002년엔 무려 9명이 중국에 건너갔다. 한국이 아주 강하던 때라 ‘기술 유출’ 얘기가 나왔다. 정상급의 해외기전 참가는 한국기원이 개입한다는 조항이 마련됐고 이창호는 이후 중국에 가지 않았다.

2006년을 넘기면서 한국기사들의 인기는 점점 시들해졌다. 중국리그는 한국 최강급만을 원했다. 일본과 대만 선수는 완전 사라졌다.

이세돌 9단은 “중국리그에서 호흡하면서 중국 바둑을 익히는 건 오히려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중국바둑이 커진 것이다.

8라운드를 막 끝낸 2010년 중국 갑조리그는 을조에서 막 승격한 안후이(安徽) 팀이 1위를 달리며 온갖 화제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 팀은 순리·순텅위·왕야오·탄샤오 등이 모두 녜웨이핑 9단의 제자들이라서 ‘녜웨이핑 팀’으로도 불린다. 모두 무명이고 신예지만 전력이 충실해 기존 강자들이 절절 매고 있다(왕야오가 얼마 전 LG배 8강에 올라 실력을 입증했다).

올해 갑조리그에서 뛰고 있는 한국기사는 최철한 9단과 이영구 8단 두 사람이다. 시안(西安) 팀의 주장인 최철한은 4연승으로 무패 가도를 달리고 있다. 팀은 현재 4위.

쓰촨(四川) 팀의 이영구는 4승3패. 팀은 10위다. 이창호 9단은 지난 5월, 오랜만에 중국 을조리그에 참가해 5승2패를 기록했다.

중국리그도 그간 곡절을 겪었지만 중국경제가 발전하고 수많은 신인이 계속 배급되면서 성장 궤도에 들어섰다. 한국보다 월등한 토양을 지닌 중국리그가 세계바둑의 마지막 보루일 수도 있다는 얘기는 그래서 나오고 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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