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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가득한 글향기 10代들아 챙겨보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51면

독서시장에 10대들을 몰고 온 MBC-TV 오락프로 '!느낌표'는 시청자들 정신을 홀딱 빼놓는다. 호들갑스런 진행 때문이다. "저럴 수 밖에 없나?"하며 고개를 잔뜩 외로 꼰채 보다가 "옳다꾸나 !"싶은 대목이 있었다. 신경림의 산문 『시인을 찾아서』(우리교육,1998)의 등장 때문이다. 지금 이 프로 다섯번째 책으로 소개 중인 이 단행본은 서정주·김수영·김춘수·황동규·최승호 등 시인들이 쓴 뛰어난 산문집 중의 하나인데, 내 경우 공부삼아 두세번을 읽어뒀다. 하긴 시집 『농무(農舞)』만큼 신경림의 25년 전 산문 『문학과 민중』(민음사)도 마음에 담아두고 있음을 고백한다.

한데 『시인을 찾아서』는 평론가 김현, 시인 최하림이 각각 쓴 같은 제목의 책도 있어 흥미로운데, 이중 『김현 전집』(문학과 지성사)3권에 실려있는 김현의 것은 아무래도 시론(詩論)비중이 크고 현학적이다. 반면 신경림의 것은 교육적 효과를 염두에 두고 집필됐으니 당연히 평이하다. 그러면서도 글에 묻어있는 향기가 정갈하다. 특히 그 시인의 사람됨에 대한 천착도 일관된 흐름인데, 유달리 기억에 남는게 박봉우·김종삼·백석·박인환·임화·김영랑 편이다. '조국이 곧 나의 직업'인 애국적 열정 하나로 삶을 지탱했던 50·60년대 시인 박봉우 편을 읽어보자.

스승 김현승의 주례로 열린 결혼식장으로 굳이 파고다공원을 고집했던 사람이 바로 그였다. 자녀 이름도 하나·나라·겨레로 각각 지었던 이 무골호인은 한잔 술에 불콰해질라치면 "온갖 것들 쓸어내고 민족 파고다회담을 열자"고 고래고래 소리질러댔던 소박한 격정의 사람이었다. 세상살이에는 젬병이었다. 사글셋방을 전전했던 그의 50년대 절창(絶唱) '휴전선'을 저자는 6·25 이후 첫 반전시(反戰詩)라고 규정한다. 하지만 그중 박봉우다운 시는 책에 소개된 '잡초나 뽑고'가 아니될까 싶다. "오늘 밤 머언 별들을 보면서/나의 직업은/조국//연탄 냄새 그득 풍기는/우리의 사회에/선량한 가장은/가을/빈 주먹".

'북치는 소년'으로 기억되는 김종삼의 사람됨은 박봉우와 또 달랐다. 동아방송 근무 20년간 받은 봉급을 폭주로 날려버리고 두딸 학비까지 밀린 대책없는 그 사람 말이다. 한데 김종삼은 희한하게 만년필·라이터만은 최고급으로 치장했다. 웬 부조화일까. 그의 고급취미란 '시인학교'등 시어에 유달리 빈번한 외래어가 말해주듯 세상 속물주의에 대한 나름의 방어기제였다. 유신시절 방송사를 점거한 헌병의 뒤통수를 낮술 먹고 후려때려 화제를 뿌리기도 했던 김종삼, 그는 현실의 비속함과 이념 과잉에 응전을 했던 귀여운 자유주의자로 서술된다.

우리 시문학사에서 소수파에 속하는 '내용없는 아름다움의 시학'도 그 때문이고, 이 포스트모던한 시대 그의 시 '북치는 소년'은 더욱 아름답게 울린다. "내용없는 아름다움처럼//가난한 아이에게 온/서양나라에서 온/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카드처럼//어린 양들의 등성이에 반짝이는/진눈깨비처럼"(전문). '!느낌표'가 일깨워준 『시인을 찾아서』를 새롭게 읽는 늦봄이 각별하다. 각설하고 이 책은 대학 수능대비에도 그만일거라는 말도 덧붙인다. 입시 왕국에서는 그런게 유용한 정보라고들 하니까.

출판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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