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가절감 발로 뛴 9개월… 빚더미서 흑자 건져올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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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펄프의 경영상태가 최근 몰라 보게 달라졌다. 이 회사는 지난 3월 LG출신의 경영자를 영입한 후 3분기에 1011억원의 매출에 91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911% 늘었고, 경상이익은 전년 동기 49억원 적자에서 26억원 흑자로 전환됐다. 2000년 이후 계속 적자를 냈고, 2002년 59억원의 반짝 흑자를 냈다가 지난해 109억원 적자로 돌아서는 등 경영상태가 불안정했다. 대한펄프는 2000억원을 들여 건설한 판지공장 준공 후 외환위기가 터져 빚더미에 앉았었다.

이 견(58.사진) 대한펄프 사장은 LG그룹이 대한펄프 창업주 2세인 최병민 회장의 요청을 받고 대한펄프로 보낸 경영인이다. 이 사장은 73년 ㈜럭키에 입사한후 줄곧 LG그룹에 일했던 생활용품 사업의 베테랑이다. 최 회장은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매제이다.

이 사장은 지난 취임 직후 8개 기업혁신팀을 만들어 회사 구석구석을 바꿔나갔다. 생산라인을 통폐합하고 제품의 포장법을 개선하는 등 혁신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겨 지금까지 135억원의 원가를 절감했다. 인원 구조조정 여파로 고개를 돌렸던 노조와의 관계도 차츰 정상화되고 있다. 이 사장은 공장을 방문할 때마다 사장실보다 노조사무실을 먼저 들른다. 노조의 동호회 활동 현장에 예고없이 찾아가 술잔을 나눈다. 매달 한 번 경영 현황을 노조에 공개했다. 이같이 노조를 경영의 파트너로 인정하자 노조는 지난 6월 이 사장에게 임금협상은 물론 단체협약안까지 백지위임하며 회사 되살리기에 동참했다. 심지어 노조위원장은 사장실이 너무 초라하다며 대형 사진 액자를 사장에게 선물했다. 이 사장은 "노사 관계 개선에 가장 중요한 것은 스킨십이다. 결국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인 만큼 가슴과 가슴을 열면 어떤 문제든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한펄프는 최근 틈새 시장을 파고들며 매출 확대를 꾀하고 있다. 비데 전용화장지 '비데후엔'은 그가 내놓은 첫 작품이다. 흡수력을 높인 '오버나이트 아기기저귀 보솜이' 를 내놨으며, 생리대 '프린세스'의 마케팅의 고삐도 죄고 있다. 이 사장은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아무리 계획이 좋아도 실행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라며 임직원에게 '실천하는 혁신'을 강조하고 있다.

또 이 사장은 내실경영을 강조한다. 그는 "유한킴벌리.P&G 등이 서로 생활용품 시장 1위를 놓고 다투는 방식을 그대로 쫓기보다는 자금의 효율적 배분이 더 중요하다"며 "내년에는 원가절감과 신제품 개발에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박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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