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 은행업무 무기한 중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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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아르헨티나 경제가 다시 위기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중앙은행은 22일부터 모든 은행업무를 무기한 중단한다고 지난 19일 밝혔다.

은행 금고에 현금이 바닥나 예금자들에게 더 이상 돈을 내줄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에두아르도 두알데 대통령은 "금융 시스템이 붕괴할 위험에 처했다"며 국민들의 협조를 당부했지만 예금인출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시위는 끊이지 않아 정국 불안은 심각해지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급한 불을 끄기 위해 국제통화기금(IMF)에 1백억달러 가량의 지원을 요청했지만 IMF는 "경제구조를 먼저 개혁하지 않으면 지원할 수 없다"는 입장을 되풀이했다.

◇끊이지 않는 예금인출 행렬=정부와 은행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진 이후 은행 창구엔 돈을 찾아가려는 사람들만 있을 뿐 아무도 돈을 맡기려 하지 않고 있다.

정부는 이런 악순환을 차단하기 위해 그동안 1인당 예금인출 한도를 엄격히 제한해 왔지만 최근 법원은 이런 조치가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18일 캐나다계 스코티아은행이 외국 은행으로는 처음으로 현금 부족을 이유로 한달간 영업정지 처분을 받자 다음 날부터 은행마다 돈을 찾아가려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현금자동인출기(ATM)도 대부분 가동이 중단됐다.

은행 관계자들은 19일 하루동안 약 4억페소(약 1억3천만달러)가 빠져나간 것으로 추산했다.

정부는 국민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은행 예금을 채권으로 지급하는 방안을 마련 중이다.

현지 언론들은 은행 업무가 재개되면 예금자들은 현금이 아닌 5~10년 만기의 채권으로 찾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당연히 아르헨티나 페소화 가치는 맥을 못추고 있다.

페소화는 지난 19일 달러당 3.18페소에 거래됐다.

올 초 '1달러=1페소'의 고정환율을 폐지하기 전과 비교하면 68%나 떨어진 것이다.

◇IMF도 지원거부 의사 밝혀=IMF의 호르스트 쾰러 총재는 당장 아르헨티나를 지원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IMF가 요구하는 개혁안을 받아들일 경우 다음달 중순에나 세부 지원조건을 논의할 협상단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아르헨티나의 호르헤 레니코브 경제장관은 "IMF와의 대화에서 상당한 진전이 있었지만 아직 일부 이견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IMF는 특히 아르헨티나 지방정부들의 재정적자에 대해 크게 우려하고 있다.

지방정부의 개혁이 없으면 아르헨티나에 대한 지원이 '밑빠진 독에 물붓기'가 된다는 것이다.

IMF는 또 아르헨티나에 진출한 외국 은행들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파산법을 개정할 것을 아르헨티나에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는 먼저 경제를 살려놓아야 개혁을 할 여력이 생긴다며 '선지원 후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마침 연차총회를 앞두고 지난 20일 워싱턴에서 모인 선진 7개국(G7)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들은 이번 아르헨티나 사태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시했다.

주정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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