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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센 주지사의 아름다운 퇴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지난 12년간 옛동독 지역의 작센 주지사였던 온 쿠르트 비덴코프(72·사진)가 17일 물러났다. 임기를 2년여 남긴 상태에서 후진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사임한 것이다.

무슨 큰 잘못을 저질러서 퇴진을 한 게 아니다. 단지 지난 1월 이케아란 저가 가구점의 물건을 좀 싸게 산 게 문제가 되자 사퇴를 선언했고, 이날 이를 실천한 것이다. 물론 그 전에도 크고 작은 구설에 오른 적은 있지만 그의 사임과는 별 관련이 없다. 야당의 탄핵 시도 같은 것도 없었다.

그 스스로 "할 일 다 했으니 더 남아 있을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고 보는 게 사실에 가깝다. 40대가 주축인 독일 정치판에서 70대인 자신의 역량이 한계에 달했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그간 선거 때마다 최고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최장수 주지사를 역임, '쾨니히(왕)쿠르트'로 불리던 그의 사임에 대해 많은 독일인들이 아쉬워하고 있다. 그가 소속된 기민당은 물론 야당에서도 옛동독 지역의 재건에 기여한 그의 공로를 치하했다. 작센의 제1야당인 민사당의 원내의장 페터 포르슈 의원은 "작센을 위한 그의 신속하고도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은 헌신을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디 벨트지는 "작센이 그에게 행운이었듯 그도 작센에 행운이었다"고 평가했다.

교수 출신인 그는 1970년대 중반 서독 기민당의 사무총장을 지냈다. 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뒤 라이프치히대 초청교수로 갔던 그는 통일 직후 주총선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했다. 당시 그를 뽑아준 작센 주민들의 뜻은 분명했다. 교수로서, 그리고 당시 집권 기민당의 중진으로서의 경험을 살려 하루빨리 서독처럼 잘 살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비덴코프는 이 요구를 성실하게 수행했다. 그는 부단히 외부자본을 유치, 이곳을 옛동독 지역의 첨단산업 중심지로 만들었다. 특히 자동차 산업의 경우 폴크스바겐에 이어 BMW와 포르셰가 이곳에 공장을 짓기로 해 독일 자동차 산업의 요람이던 작센이 옛 명성을 되찾게 됐다.이로 인해 작센은 옛동독 지역에서 가장 잘 사는 주가 됐다.

노욕(老慾)을 버리고 미련없이 떠난 그의 모습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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