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공연·봉사 다니는 청소년 마술 동아리 B.M.C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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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책과 공부에만 매달리기보다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을 택한 고등학생들이 있다. 청소년 마술 동아리 B.M.C(Bangbae Magic Club) 회원들이 그들이다. “마술을 통해 사람들에게 웃음과 즐거움을 전할 수 있어 너무 뿌듯하다”고 말하는 ‘행복한 마술사’들을 만났다.

“와, 어떻게 한 거예요? 속임수 아니에요?”

지난 12일 오후 방배동 방배유스센터. 어린이 마술학교에 온 초등학생 20여 명이 부산스럽게 뛰어다닌다. 김재용(고3)군이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여러분 주목, 주목~! 지금부터저를 선생님이라고 부르세요” 천방지축인 남자 아이들은 들은 체 만 체다. “에이~ 선생님 아니잖아요”.

결국 아이들을 5~6명씩의 팀으로 나눈 후 팀마다 마술 선생님 한 명씩을 배정했다. 이날의 마술 선생님은 청소년 마술 동아리 B.M.C에서 활동하고 있는 고등학생 “1부터 60까지의 숫자 중 하나를 생각해보세요”. 아이들은 마술 선생님이 든 카드를 뚫어져라 바라본다. 1부터 60까지의 숫자가 빼곡히 적혀있는 특별한 카드다.

“네가 생각한 숫자가 이 카드에 있어?”“없어요”. “그럼 여기는?” “있어요”. 해당 숫자가 있는 카드와 없는 카드가 모두 분류됐다. 마술 선생님은 여유 있게 웃음을 띠며 말한다. “60이지?” 아이의 두 눈이 동그래진다.

“그걸 어떻게 알았어요?”

그제서야 아이들은 앞에 앉은 형을 마술 선생님으로 대접한다. 이어서 마술 비법이 전수된다. “아, 이렇게 하면 되는 거예요? 와~ 학교 가서 친구들한테 해봐야지.” 목걸이에 링을 거는 마술과 카드 마술이 이어졌다. 아이들은 신기해하고 마냥 즐거워했다. 어린이 마술학교는 아이들이 마술을 보다 가까이 접할 수 있도록 서초구립 방배유스 센터와 B.M.C가 함께 기획한 행사다. 마술이 창의력과 사회성을 기르는 데 효과적이란 사실이 알려지면서 학부모들의 관심도 뜨겁다.

마술 통해 밝고 긍정적인 성격으로 변화

B.M.C는 상문고 마술 동아리로 시작해 2006년 방배유스센터에 청소년 동아리로 등록한 후 다양한 공연과 봉사 활동을 펼치고 있다. 약 35명의 고등학생들이 활동 중이며 한달에 두번 정도 모임을 갖는다.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기본 마술을 가르쳐주는 것은 물론 프로 강사를 초빙해 고난도 마술도 섭렵하면서 기량을 다지고 있다.

마술 동아리는 마술을 배우는 것 외에도 마술이 갖는 즐거움을 전하는 일도 주요 활동의 하나로 삼는다. 지역 주민들을 위한 행사를 비롯해 고아원, 양로원 봉사 활동에도 종종 참여하고 있다.

동아리 회장 김재용군은 “고등학생들이라 봉사 활동을 자주 가진 못하지만 한번씩갈 때마다 ‘마술을 배우길 정말 잘했구나’하는 생각을 한다”며 “동전이 있다가 사라지는 기본 마술 하나에도 신기해하고 즐거워하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보면 정말 뿌듯하다”고 말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2008년 여름방학때 전라남도 ‘노초도’에서의 3박4일 봉사 활동이다. 문화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하는 곳이어서 청소년 봉사단에 대한 동네 사람들의 관심과 환영은 대단했다.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동전 마술, 카드 마술 등을 가르쳐줬는데 ‘마술사 오빠’들이라며 곧잘 따르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마술을 배우면서 성격이 변했다는 학생들도 많다. 동아리에서 마술을 배운 지 4개월째인 남궁호(고1)군은 마술 덕분에 없던 장기가 생겼다.

“낯가림도 많고 내성적이었는데 마술을 시작하면서 많이 바뀌었다”며 “간단한 마술 하나면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어 으쓱해진다”며 해맑게 웃었다. 몇해 전에는 학급에서 왕따를 당하던 한 학생이 마술을 배우면서 친구를 사귀게 되고 나중엔 인기 학생이 된 사례도 있다.

방배유스센터에서 청소년 동아리를 담당하는 김승섭씨는 “많은 학부모들이 처음엔 공부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걱정한다”면서 “하지만 아이가 마술을 배우면서 밝고 적극적인 성격으로 바뀌는 것을 보곤 마술 동아리에 적극 신뢰를 보낸다”고 말했다.

마술 동아리는 취미 활동을 넘어 인생의 방향을 결정짓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중3 때부터 ‘마술 아카데미’를 통해 마술을 배우기 시작했다는 하일수(고2)군은 마술학과에 가기로 결정했다. “마술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한다”는 그는 “나 스스로 마술을 즐기면서 행복한 마술사가 되고 싶다”며 당찬 포부를 밝혔다.

[사진설명]청소년 마술 동아리 ‘B.M.C’가 지난 12일 ‘어린이 마술학교’를 열었다. 이날 마술 선생님으로 활약한 하일수·남궁호·김재영군(왼쪽부터).

< 하현정 기자 happyha@joongang.co.kr / 사진=김경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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