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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로 변한 제닌은 '거대한 무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민간인 수백명을 학살했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지만 진상이 드러나지 않았던 요르단강 서안 북부 난민촌 제닌 현장이 16일 처음으로 공개됐다. 제닌을 취재한 파이낸셜 타임스 제임스 드러몬드 기자의 르포를 요약, 정리했다.

편집자

"이제는 안전합니다. 나오세요. 나와서 치료를 받으세요."

적신월사(이슬람권의 적십자사) 직원들이 폐허의 거리에서 확성기로 이렇게 외친다. 여기저기서 움직임이 나타난다.은신처에서 기어나온 생존자들은 거대한 폐허더미로 변한 마을 모습에 질린 듯 그 자리에서 쓰러진다. 살아남았다는 사실은 이들에게 전혀 위안이 되지 못한다. 2주 전만 해도 1만3천명의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북적대며 살아가던 서안북부 난민촌 제닌은 이제 산더미처럼 쌓인 건물파편 더미와 그 밑에 깔린 시체들의 집합소가 돼버렸다.

집집마다 이잡듯 뒤지며 열흘이 넘도록 집요하게 계속된 이스라엘군의 공격이 종료된 16일, 마을에 들어온 인권단체 직원들은 생존자를 구출하고 폐허 속에서 시체를 찾아내느라 눈코 뜰 새 없다. 사방에 시체썩는 냄새가 진동한다. 이스라엘군은 마스크로도 냄새를 막을 수 없어 코를 싸맨다.

나빌 샤스 팔레스타인 장관은 "이스라엘군은 학살에 6일, 시체를 치우는 데 6일이 걸렸다"며 목이 쉬도록 비난한다. 그러나 이스라엘군은 "죽은 민간인들은 우리의 사전 경고를 무시하고 집에서 버텼던 사람들"이라고 주장했다.

하마스 지휘자였던 남편을 이스라엘군의 총격에 잃은 파티마 압둘 살람 자버는 "남편의 시체를 찾을 수 없다면 그가 늘 끼고 다니던 결혼반지만이라도 찾아야 한다"며 오열했다.

아수라프 아부 히자의 시체는 정말 찾을 수 없다. 이스라엘군 아파치 헬기가 발사한 미사일이 그가 버티고 있던 집을 정통으로 맞혀 몸이 산산조각났기 때문이다. 몸에서 떨어져 나간 뒤 뒤틀린 머리와 살점 몇 조각만이 남아 있는 게 전부다.

며칠째 집안에 갇혀 있다 가족들이 마실 물을 뜨려고 잠시 나왔던 우마르 무카스카스는 몇 발자국도 못가 총에 맞았다. 그의 시체는 12일 동안이나 그 자리에 방치됐다. 일부 주민은 "이스라엘군이 트럭에 시체를 가득 싣고 가는 걸 봤다"고 했다. 또 이스마일이란 남자는 "이스라엘군이 나를 붙잡은 뒤 방패로 삼아 어깨 너머로 총을 갈겨댔다"며 치를 떨었다.

정리=강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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