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기업에 적대감 없다" : 과거 '급진' 발언 입장 바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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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민주당 노무현(얼굴) 후보가 과격·급진 이미지 씻기에 고심하고 있다.

자신의 1988년 재벌해체,89년 현대중공업 파업현장 발언이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경쟁상대인 이인제 후보에 이어 한나라당도 이념·사상논쟁에 적극 가담하고 있다. 당 안팎에서 전방위로 집중포화를 맞는 형국이다.

이날 盧후보 캠프는 핵심 정책을 백지에서 새로 시작하겠다고 물러섰다. 후보가 되면 각계 전문가 그룹과 충분한 토론을 거쳐 다듬어 나가겠다는 것이다.

김원기(金元基)고문과 김근태 의원,김상현(金相賢)전 의원 등이 참석한 '화해와 전진 포럼'도 盧후보에게 대미(對美)관계를 보강하고 이인제 후보를 포용해 배타적 인상을 벗어나라고 조언한 것으로 전해졌다.

盧후보는 자신의 입장을 바꾸는 이유를 "당시 나는 인권변호사 출신의 40대 초반 청년이었다. 국가 지도자를 지향하는 지금의 나는 훨씬 이성적·합리적이고 종합적 관점에서 세상을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29일 오전 KBS라디오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해서도 적극 해명했다. 재벌해체 발언은 "당시 권력이 국제상사를 해체해 한일그룹에 특혜로 넘겨준 상황에서 정권이 재벌을 자의적으로 주무른다면 (차라리 주식을)부자들에게 주지 말고 노동자들에게 나눠주라는 '비유적 야유 발언'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내가 재벌간 상호출자·상호 지급보증,내부거래 등을 분리하자는 주장을 했다고 이를 재벌해체라고 해선 안된다" "민영화는 실용주의 정책"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나는 기업에 대해 적대감을 갖고 있지 않다"는 말을 여러 번 되풀이했다. 자신이 "민주당의 정강정책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고 했고,"개혁은 급진적이고 과격해선 안된다"고도 말했다.

하지만 李후보와 한나라당은 '비유적 야유'라는 해명에 대해 "당장의 위기를 모호한 표현을 동원해 모면하려는 것 아니냐"고 비난했다. 한나라당 이강두(李康斗)정책위의장은 "과거의 주장을 지금 와서 부정한다면,현재 주장도 미래에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라고 지적했다. 당내에서도 "즉흥적으로 말을 바꾸는 행태야말로 盧후보의 불가측성을 우려하게 만드는 이유"란 얘기가 나왔다.

盧후보측이 기존 지지자들의 반발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입장선회를 한 이유는 이념공세가 계속될 경우 중산층이 등을 돌릴 수 있어서다. 한 참모는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빌라파문을 예로 들며 "사실 중산층·서민층의 동요가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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