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평등 실천 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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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0면

'여보, 준비 다 됐어? 간식은?'

오늘도 우리 부부는 간식을 챙겨 들고 외출을 서두른다.

우리가 결혼한 지도 20년. 그동안 살아오면서 크고 작은 여러가지 모임들이 있었지만 부부 모임은 특별한 매력이 있다.

매달 세번째 월요일 저녁 시간에 이뤄지는 이 모임엔 약 20쌍의 부부가 비정기적으로 참가한다.

모임은 각 가정집에서 돌아가면서 이뤄지지만 특이한 것은 그 가정이 음식을 준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신 각자가 먹을 만큼씩의 간식을 가져간다. 선물도 일절 없다.

처음 모임을 만들 때부터 부부 모임인 만큼 남편와 아내가 동등하게 참여해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 했다.

사실 우리들은 남의 집을 방문할 때 '무슨 선물을 사야 하나'하는 고민을 시작한다. 방문 자체가 고민이 되는 것이다.

또 장소를 제공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음식 준비에 부담을 느끼게 된다.

일단 집에 손님이 오면 가정주부는 손님 뒷바라지 하느라 주방에서 나오지도 못하고 일에 파묻혀야 한다.

손님들이 가고 나면 쌓이는 엄청난 설거지. 여자들에게 모임이란 부담과 동의어가 돼 버린다.

남편과 아내가 모두 즐거운 마음으로 참가할 수 있다는 건 이 모임이 계속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다.

저녁 8시쯤 모이는 이 모임의 회원들은 일단 자신의 배우자에게 하고 싶었던 말들을 편지로 쓴다. 나는 밤 늦게 귀가한 남편에 대한 서운함, 내가 느꼈던 외로움 등을 편지에 적어 주고 남편은 내게 느끼는 서운함·고마움 등의 감정을 적어서 전해준다.

그러다 보면 서로에 대한 오해가 풀리고 사랑하는 마음이 더 커지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나면 다 함께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시간이다. 고민을 함께 얘기하다보면 어려운 문제에 대한 해답도 쉽게 찾을 수 있다.

한시간 정도 함께 이야기를 하고 나면 다과가 준비된다. 장소를 제공한 주인집에서는 큰 상과 빈 접시만을 꺼내오는 것으로 끝난다. 각자 가져온 간식을 상위에 펼쳐놓으면 금세 근사한 파티상이 된다. 간식이 끝난 다음 설거지도 부부가 함께 해야 한다는 게 원칙이다.

이제 남성과 여성이 가정뿐 아니라 직장·사회·국가 등 모든 부문에서 그 역할과 책임을 공유하는 평등한 동반자가 돼 가고 있다.

여성과 남성이 함께 발전하고 함께 행복해질 수 있는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는 모임의 문화도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이재선<47·주부·경기도 안양시 박달2동>

◇알림=지난해 10월 26일부터 여성부와 함께 진행해온 남녀평등 실천수기 게재를 마칩니다. 참여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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