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이 중앙처리장치(CPU)의 강자라면, TI는 신호처리칩과 영상처리칩의 강자다. TI는 지난해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인텔.삼성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올해도 3위를 차지할 것이 확실시된다. 템플턴은 '험블 & 헝그리'를 내세우며 신중한 경영을 펼치면서도 TI의 미래에 대해서는 자신감을 보였다.
-반도체 시장은 여전히 격변기다. TI의 미래를 어떻게 보고 있나.
"TI에 좋은 소식은 주력인 반도체칩 분야에서 대적할 만한 뚜렷한 경쟁자가 없다는 점이다. 신호처리칩과 영상처리기술(DSP).아날로그칩 등 다양한 반도체 분야에서 골고루 잘하고 있는 반도체 기업은 TI가 유일하다. 단일 제품이 아닌 융합제품이 득세할 미래에는 TI가 더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것으로 본다."
-앞으로 반도체 시장은 몇 개의 대형 업체만 살아남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
"과거 50년 동안 기술발전 과정을 되짚어 보라. 15년 동안은 메인프레임 컴퓨팅(대형)이, 그 다음 15년 동안은 미니 컴퓨팅(중형)이, 그 다음 15년은 PC(개인용 컴퓨터)가 지배해왔다. 앞으로 15년은 엔터테인먼트의 시대가 될 것이다. 인텔은 PC시대에 최강자로 떠올랐다. 엔터테인먼트 시대에는 신호.영상처리 핵심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TI가 강자로 떠오를 것이다."
-TI가 인텔을 제치고 최고의 반도체 회사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인가.
"중요한 것은 누가 최강자의 권리를 주장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고객의 요구에 잘 대응하느냐다. 내가 강조하는 겸손은 바로 고객을 향한 겸손이다. 변화무쌍한 시장에서 영원한 절대강자는 없다. 그러나 TI는 앞으로 더 올라가야 할 고지들이 남아있다. TI는 여전히 배고프다."
-내년 5월이면 TI가 설립 75년을 맞는다. 지질탐사 장비 회사로 시작해 어떻게 변신을 거듭해 왔나.
"시대 흐름에 따라 주력사업을 유연하게 바꾸어 왔다. 그동안 방위산업과 PC제조업.소프트웨어업 등 비주력 분야를 꾸준히 매각하고 반도체를 주력사업으로 밀고 왔다. 그러나 시대가 변해도 바뀌지 않는 TI의 원칙이 있다. 기술을 기반으로 한 회사라는 기본 가치가 바로 그것이다. 올해 연구개발(R&D)에만 20억달러를 투자했다. 내년엔 투자가 이보다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TI 하면 복잡한 계산을 할 수 있는 공학용 계산기를 떠올리는 일반 소비자들이 많다. 그러나 TI 전체 매출에서 공학용 계산기가 차지하는 비중은 5%에 그치고 있다. 접을 생각이 없나.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TI의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적지만 공학용 계산기 시장에서 우리의 위치는 독보적이다. 게다가 어린 공학도들을 공부시키고 훈련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는 회사 정신과도 부합한다."
-TI는 댈러스 본사 직원만 1만여명에 달하는 거대 회사다. 젊은 연구자들의 창의성을 이끌어내기 위해 어떻게 동기를 부여하는가.
"직원들에게 도전의식을 심어주는 게 이직률을 낮추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젊은 직원들에게도 많은 권한을 주고 있다. 개인적으로 직원들의 이야기를 자주 듣고 귀를 열어놓으려고 노력한다. 취임 후 매달 한 번씩 각 연구분야를 돌아가며 젊은 직원 10~20명과 격의없이 대화하는 라운드테이블을 열고 있다."
-능력있는 직원과 윤리적인 직원 중 어느 쪽을 더 선호하나.
"우리 회사가 윤리를 얼마나 강조하는지를 묻는 질문인 것 같다. TI는 윤리경영이 유행으로 등장하기 시작하기 무려 40년 전인 1962년에 윤리강령을 만들었다. 물론 능력도 객관적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능력있는 직원들을 뽑는 것보다 이미 뽑은 인재들을 더 갈고 닦게 하는 것이 TI의 인사원칙이다. 업계 최고 수준의 대우는 기본이고, 다른 회사보다 더 빨리 더 많은 일을 배우도록 하는 것이 TI의 숨겨진 경쟁력이다."
댈러스=최지영 기자
***TI는 어떤 회사
58년 집적회로 세계 최초로 개발
1930년 출범한 지질탐사 업체인 GSI(Geophysical Service Inc.)가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의 전신이다. 51년 TI로 이름을 바꾸었고, 53년 뉴욕 증권시장에 상장했다.
58년 회사 소속 연구원인 잭 킬비가 세계 최초로 집적회로(IC)를 개발하면서 본격적으로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었다. 90년대 중반까지 프린터.통신.소프트웨어.노트북 등을 만드는 종합전자회사로, 방위산업까지 포함해 14개 분야에 걸친 방대한 사업영역을 유지해 왔다. 하지만 95년 톰 엔지버스 회장이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사업 영역을 ▶반도체▶센서와 제어부품▶공학용 계산기▶영상처리칩(DLP)의 4개 핵심 부문으로 대폭 축소했다.
반도체가 전체 매출의 85%로 가장 많다.
전 세계에서 매년 생산되는 290억개의 휴대전화에 TI의 칩이 들어간다. 또 PDP와 LCD TV 등 디지털 TV에 쓰이는 핵심 영상처리칩(DLP)을 차세대 주력 제품으로 밀고 있다.
리처드 템플턴 사장은 지난 5월 CEO로 선임됐다. 첫 직장으로 TI에 입사한 이래 쭉 TI에서만 근무했다. 2000년부터 TI의 최고운영책임자(COO)를 맡아 실질적인 2인자 역할을 해와 TI의 강점과 약점을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바로잡습니다] 12월 15일자 E6면의 '미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 템플턴 사장 인터뷰'기사 중 그래프에 나온 TI의 매출액을 980억달러에서 98억달러로 바로잡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