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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반도체 업체 TI 템플턴 사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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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험블(겸손하다) & 헝그리(배고프다)'. 이달 초 미국 텍사스 댈러스 본사에서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 리처드 템플턴(46) 최고경영자(CEO)를 단독 인터뷰할 때 그가 몇번이나 강조한 두 단어다. 시장에서 아무리 확고한 위치를 차지한 강자라도 미래를 준비하지 않으면 한 순간에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과 긴장을 반영하는 표현이다.

인텔이 중앙처리장치(CPU)의 강자라면, TI는 신호처리칩과 영상처리칩의 강자다. TI는 지난해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인텔.삼성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올해도 3위를 차지할 것이 확실시된다. 템플턴은 '험블 & 헝그리'를 내세우며 신중한 경영을 펼치면서도 TI의 미래에 대해서는 자신감을 보였다.

-반도체 시장은 여전히 격변기다. TI의 미래를 어떻게 보고 있나.

"TI에 좋은 소식은 주력인 반도체칩 분야에서 대적할 만한 뚜렷한 경쟁자가 없다는 점이다. 신호처리칩과 영상처리기술(DSP).아날로그칩 등 다양한 반도체 분야에서 골고루 잘하고 있는 반도체 기업은 TI가 유일하다. 단일 제품이 아닌 융합제품이 득세할 미래에는 TI가 더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것으로 본다."

-앞으로 반도체 시장은 몇 개의 대형 업체만 살아남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

"과거 50년 동안 기술발전 과정을 되짚어 보라. 15년 동안은 메인프레임 컴퓨팅(대형)이, 그 다음 15년 동안은 미니 컴퓨팅(중형)이, 그 다음 15년은 PC(개인용 컴퓨터)가 지배해왔다. 앞으로 15년은 엔터테인먼트의 시대가 될 것이다. 인텔은 PC시대에 최강자로 떠올랐다. 엔터테인먼트 시대에는 신호.영상처리 핵심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TI가 강자로 떠오를 것이다."

-TI가 인텔을 제치고 최고의 반도체 회사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인가.

"중요한 것은 누가 최강자의 권리를 주장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고객의 요구에 잘 대응하느냐다. 내가 강조하는 겸손은 바로 고객을 향한 겸손이다. 변화무쌍한 시장에서 영원한 절대강자는 없다. 그러나 TI는 앞으로 더 올라가야 할 고지들이 남아있다. TI는 여전히 배고프다."

-내년 5월이면 TI가 설립 75년을 맞는다. 지질탐사 장비 회사로 시작해 어떻게 변신을 거듭해 왔나.

"시대 흐름에 따라 주력사업을 유연하게 바꾸어 왔다. 그동안 방위산업과 PC제조업.소프트웨어업 등 비주력 분야를 꾸준히 매각하고 반도체를 주력사업으로 밀고 왔다. 그러나 시대가 변해도 바뀌지 않는 TI의 원칙이 있다. 기술을 기반으로 한 회사라는 기본 가치가 바로 그것이다. 올해 연구개발(R&D)에만 20억달러를 투자했다. 내년엔 투자가 이보다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TI 하면 복잡한 계산을 할 수 있는 공학용 계산기를 떠올리는 일반 소비자들이 많다. 그러나 TI 전체 매출에서 공학용 계산기가 차지하는 비중은 5%에 그치고 있다. 접을 생각이 없나.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TI의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적지만 공학용 계산기 시장에서 우리의 위치는 독보적이다. 게다가 어린 공학도들을 공부시키고 훈련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는 회사 정신과도 부합한다."

-TI는 댈러스 본사 직원만 1만여명에 달하는 거대 회사다. 젊은 연구자들의 창의성을 이끌어내기 위해 어떻게 동기를 부여하는가.

"직원들에게 도전의식을 심어주는 게 이직률을 낮추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젊은 직원들에게도 많은 권한을 주고 있다. 개인적으로 직원들의 이야기를 자주 듣고 귀를 열어놓으려고 노력한다. 취임 후 매달 한 번씩 각 연구분야를 돌아가며 젊은 직원 10~20명과 격의없이 대화하는 라운드테이블을 열고 있다."

-능력있는 직원과 윤리적인 직원 중 어느 쪽을 더 선호하나.

"우리 회사가 윤리를 얼마나 강조하는지를 묻는 질문인 것 같다. TI는 윤리경영이 유행으로 등장하기 시작하기 무려 40년 전인 1962년에 윤리강령을 만들었다. 물론 능력도 객관적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능력있는 직원들을 뽑는 것보다 이미 뽑은 인재들을 더 갈고 닦게 하는 것이 TI의 인사원칙이다. 업계 최고 수준의 대우는 기본이고, 다른 회사보다 더 빨리 더 많은 일을 배우도록 하는 것이 TI의 숨겨진 경쟁력이다."

댈러스=최지영 기자

***TI는 어떤 회사

58년 집적회로 세계 최초로 개발

1930년 출범한 지질탐사 업체인 GSI(Geophysical Service Inc.)가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의 전신이다. 51년 TI로 이름을 바꾸었고, 53년 뉴욕 증권시장에 상장했다.

58년 회사 소속 연구원인 잭 킬비가 세계 최초로 집적회로(IC)를 개발하면서 본격적으로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었다. 90년대 중반까지 프린터.통신.소프트웨어.노트북 등을 만드는 종합전자회사로, 방위산업까지 포함해 14개 분야에 걸친 방대한 사업영역을 유지해 왔다. 하지만 95년 톰 엔지버스 회장이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사업 영역을 ▶반도체▶센서와 제어부품▶공학용 계산기▶영상처리칩(DLP)의 4개 핵심 부문으로 대폭 축소했다.

반도체가 전체 매출의 85%로 가장 많다.

전 세계에서 매년 생산되는 290억개의 휴대전화에 TI의 칩이 들어간다. 또 PDP와 LCD TV 등 디지털 TV에 쓰이는 핵심 영상처리칩(DLP)을 차세대 주력 제품으로 밀고 있다.

리처드 템플턴 사장은 지난 5월 CEO로 선임됐다. 첫 직장으로 TI에 입사한 이래 쭉 TI에서만 근무했다. 2000년부터 TI의 최고운영책임자(COO)를 맡아 실질적인 2인자 역할을 해와 TI의 강점과 약점을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바로잡습니다] 12월 15일자 E6면의 '미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 템플턴 사장 인터뷰'기사 중 그래프에 나온 TI의 매출액을 980억달러에서 98억달러로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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