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北관계 숨통 트이나 : 장관급회담 합의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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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 이후 한층 경색된 한반도 정세에서 남북한이 이산가족 상봉 재개 등에 극적으로 합의한 것은 양측이 각기 내부적으로 타개해야 할 사정이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우선 북한으로선 춘궁기와 농사철을 맞아 식량과 비료의 확보가 시급하다. 또 외화벌이를 위해 기획된 아리랑축전에 남쪽 당국의 협조가 필요하고, 부시 행정부의 대북(對北)압박에 대해 숨통을 틔울 수 있는 여건 마련도 절실하다.

우리 정부도 한반도 긴장고조를 막기 위해 남북관계의 안정적 관리가 무엇보다 필요한 상황이다. 또한 ▶햇볕정책의 성과 유지▶월드컵의 성공적 개최 등을 위해 대북관계를 개선할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됐다.

북한은 3대 외화원(外貨源)인 금강산 관광 대가·미사일 판매·조총련의 송금 등에 장애가 생겨 곤경을 겪고 있다.

결국 북측은 식량 및 비료의 확보와, 아리랑축전에 보다 많은 관광객이 참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선 남측 당국과의 대화를 피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미국의 압박에 대해 '강경태세'를 표명하지만 내심 위기감을 느끼는 점도 남북대화를 필요로 하는 이유라는 게 정부 당국자들의 평가다. 한 당국자는 "동유럽 국가들이 붕괴했던 1990년대 초 남북대화에 응해 기본합의서를 체결했듯이 북한은 주변정세가 어려워지면 대남(對南)대화를 하나의 '안전판'으로 이용했다"고 말했다.

정부로서도 북·미관계의 악화에 따라 한반도 정세가 불안해지는 것은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올 하반기부터는 북한의 핵사찰을 둘러싸고 북·미간에 긴장이 조성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를 지켜만 볼 수는 없고 나름대로 대북 설득작업을 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햇볕정책의 성공적 관리'라는 측면에서도 남북대화는 필요하다. 통일부의 한 당국자가 "정상회담까지 이뤄낸 현 정부가 이렇다할 남북관계의 진전 없이 임기를 마치면 나름의 성과는 사라지고 '퍼주기 논란'만 남을 것"이라고 말한 것은 이런 측면을 반영한다.

서로가 이런 상황인식을 깔고 이뤄진 비밀 접촉에서 북측은 지난 21일부터 27일까지 실시 중인 한·미 합동연습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보였다.

그러나 양측은 결국 3월 초 '이 연습이 끝나고 4월 중에 당국대화 재개'에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측이 최근 미국을 집중 성토하면서도 대남 비난을 자제한 것이나, 우리 정부가 금강산 관광지원책을 마무리지은 것도 남북간 비밀합의의 연장선상에서 진행된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미국측도 북·미대화에 앞서 남북관계 진전이 이뤄지는 이른바 선남후미(先南後美)방식의 대화구도에 이해를 보였다는 것이 한 고위 외교소식통의 설명이다. 이 소식통은 "지난 2월의 한·미 정상회담 당시 우리 정부는 남북대화의 채널을 통해서도 미국의 최대 관심사인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를 풀 수 있도록 하겠다는 뜻을 전달해 미국측의 양해를 얻었다"고 말했다.

이번 합의를 계기로 남북관계는 앞으로 상당한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베이징=유광종 특파원, 서울=이영종 기자

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

◇2000년

▶6월 13~15일 남북 정상회담

▶6월 27~30일 1차 적십자회담

▶7월 29~31일 1차 장관급 회담

▶8월 15~18일 1차 이산가족방문단 교환

▶9월 11~14일 김용순 특사 서울·제주 방문

▶9월 18일 경의선 철도·도로연결 기공식

▶9월 25~26일 1차 남북 국방장관 회담

▶12월 27~30일 1차 남북 경제협력추진위

◇2001년

▶2월 26~28일 3차 이산가족방문단 교환

▶3월 10~14일 김한길 문화관광부장관 방북

▶3월 24일 정주영 회장 사망. 북한 조문단 서울 방문

▶9월 15~18일 5차 장관급 회담

▶10월 12일 북,4차 이산상봉(10월 16일 예정) 일방 연기

▶11월 9~14일 6차 장관급 회담(금강산여관)

▶12월 16~31일 북한 경수로사업관계자 19명 남한 원자력발전소 시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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