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도 못하냐" 폭행… 이 부러뜨리고 구금자 방에 맹견 풀어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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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미칠 것 같다. 벌써 독방 생활 석달째다. 간수들은 내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조차 알려주지 않고, 다음달에도 여기서 나갈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한다."(이민법 위반 혐의로 뉴욕 구치소에 수감된 구금자)

"사방이 온통 막힌 독방에서 석달 넘게 갇혀 있다. 열발짝 떨어진 샤워실에 가려 해도 수갑을 차야 한다. 가족과는 한달에 한번, 15분만 만날 수 있다."(비자 유효기한 초과로 시카고 구치소에 구금된 레바논 목사 라비드 하다드)

국제사면위원회는 18일 9·11 테러 사건 직후 테러 음모 연루 혐의로 미국 사법당국에 의해 마구잡이로 체포돼 구금생활을 하고 있는 용의자들의 비참한 실태를 보고서에서 폭로하고, "미국이 수감자들에게 국제기준에 미달하는 잔혹하고 비인도적인 처우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공포의 독방=특히 뉴욕에 구금된 40여명은 '특별관찰' 대상으로 지정돼 사방이 막히고 하루종일 불이 켜진 독방에서 지내고 있다.신문을 받거나 면회를 하기 위해 감방을 벗어날 때면 발에는 족쇄,상체에는 쇠사슬,손에는 수갑이 어김없이 채워진다.

병원으로 후송된 한 이집트인 수감자는 입원 2주 내내 침대에 쇠사슬로 묶인 채 지내야 했다.그는 "장기간 독방생활로 눈앞에 헛것이 보인다"며 정신 불안을 호소하고 있다. 보고서는 "구치소측은 구금자들과 변호사가 면담할 때조차 비디오로 감시해 정상적인 접견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학대·모욕 행위=뉴저지주 파사익 카운티 감옥에선 아랍계 수감자가 영어를 잘 못 알아듣자 간수가 그의 머리를 테이블에 내리쳐 이빨 여러개가 부러졌다. 이 감옥은 수감자들 방에 맹견을 풀어 겁주는 행위를 반복하다가 사면위가 방문한 2월 중순 이후 중단했다고 보고서는 폭로했다.

구금자들은 국제법 상 보장된 하루 1시간의 운동도 1주에 2번만 허용받고 있으며 대부분 이슬람교도들인 수감자들에게 절대 금기(禁忌) 음식인 돼지고기를 식사로 주기도 했다. 이 때문에 구금자들은 단식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무기한 구금'=미 이민국은 9·11 이후 미 전역에서 대부분 이슬람교도인 아랍권과 동남아 출신 외국인 1천2백여명을 긴급체포한 뒤 이중 3백17명을 법정 허용 시한인 48시간을 넘겨 구금한 뒤 기소했다. 이중 13명이 40일 이상, 9명이 50일 이상 구금된 뒤 기소됐고 사우디아라비아 용의자 1명은 1백12일이나 구금 후 기소됐다. 영문도 모른 채 끌려온 구금자들은 수사 과정에서 폭언과 협박, 굶기기 등에 시달렸으며 가족과 변호사 접견을 장기간 금지당했다.

구금자 대부분은 전과가 없는 단순 이민법 위반자들로 평소 같으면 불구속 수사 대상이라고 사면위는 지적했다.현재 뉴욕시를 비롯한 27개주에는 3백27명이 6개월 넘게 구금돼 있다.

◇보고서 의미=국제 사면위는 뉴욕과 뉴저지주 등의 구치소 3곳을 직접 방문해 구금자들에 대한 처우를 구체적으로 파악,보고서를 작성했다. 사면위는 "미국 정부에 자료를 요청했으나 거부돼 직접 조사에 나서게 됐다"고 밝혔다.

9·11 테러와 관련, 미국 내에서 체포된 용의자들이 비인도적 대우를 받고 있다는 인권단체들의 비판은 테러 이후 지속적으로 제기됐지만 사면위가 이같은 보고서를 낸 것은 이례적이다.

사면위는 "미국이 안보를 이유로 테러 용의자를 구금할 수는 있으나 이같은 사태는 인권을 침해하는 독단적 행위"라면서 "구금자들에게 국제기준에 합당한 대우를 하라"고 촉구했다.

강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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