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我 밖으로 지적 탈주 : 11권째 철학서 출간 이진경 박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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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안과 밖은 다른 것과 같은 것을 구분하는 경계다. 이 경계가 완고하게 대립하는 '극단의 시대'에 그것은 적과 아군의 전선이었으며, 협소한 '사유'에 갇혀 있던 철학에선 자아와 세계를 가르는 수단이었다. 그러나 그 '안'의 지평을 넓혀 '밖'마저 우리 삶의 일부임을 깨닫는 것은 인식이 확장될 때만 가능하다. 엄마 품 속의 자아가 세상 속으로 확장되는 것처럼….

그 철학의 '외부'에서 무려 11권의 철학책을 출간한 학자가 있다. 최근 『철학의 외부』(그린비刊)를 출간한 필명 이진경(본명 박태호)박사는 사회학자이다. 철학도가 아닌 그가 30대 후반이라는 나이에 놀라울 정도로 많은 철학적 저술을 쏟아놓고 있는 것이다.

이씨는 1980년대 후반에 학계에서 치열하게 벌어졌던 한국사회 성격 논쟁의 방법론적 빈곤을 비판한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 방법론』(아침刊)으로 젊은 연구자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필명 이진경이 '이것이 진짜 경제학이다'를 줄인 것이라는 데서도 알 수 있듯 당시 그가 기댔던 것은 마르크스 정치경제학이었다. 사회학도인 그는 사회학은 물론 철학·경제학을 넘나들며 마르크스주의를 재구성하겠다는 의욕을 감추지 않았다.

그러나 사회주의가 붕괴하면서 그것으로는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삶의 방식, 새로운 공동체를 구성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생각에 이른다. 그리고 마르크스주의가 지닌 형이상학에서의 '탈주'를 시도한다. 그 '탈주'의 씨앗이 마르크스 자체에 이미 내재되어 있다는 생각에 따른 것이다.

이씨가 기댄 것은 인간 내면의 '무의식'에 주목한 프로이트, '담론'을 통해 감옥·성(性) 등과 같은 미시권력을 분석한 푸코, 이성에 바탕을 둔 동일성으로 환원되지 않은 '차이'를 강조한 철학자 들뢰즈·가타리 등이다. 강단철학이 '이성적 사유=보편성'이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강고한 형이상학의 아성을 구축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는 새로운 논의 지평을 만들어 갔다. 고정된 보편적 진리에 집착하는 전통 철학에 반기를 든 것이다. 그리고 『철학과 굴뚝 청소부』(그린비刊), 『수학의 몽상』·『근대적 시·공간의 탄생』·『철학의 모험』(이상 푸른숲刊) 등의 철학책을 연달아 내놓았다.

이씨의 '탈주'와 '외부'에 대한 규정에 대해서도 전통적인 이원론적 구분을 거부한다. 사유 속에 갇혀 있는 '자아'를 우리에게 열려 있는 세계 속으로 탈주시킴으로써 세계를 변화하게 하고 세상을 탈주케 하고자 한다. 세계 속으로의 탈주는 곧 세계 자체의 탈주이기도 한 셈이다.

이씨는 또 다른 탈주를 꿈꾸고 있다. 16세기 이후 주자학의 '예(禮)'가 통치질서를 뒷받침하는 권력으로 작동해 왔고 그것이 지금까지 살아 남아 있다는 생각에서다. 이씨는 우리 삶에서 미시적으로 작동하는 권력을 비판적으로 분석해 새로운 삶의 방식을 담을 수 있는 공동체를 그려 보고자 한다.

김창호 학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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