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일, 태평양 '암초'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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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중국과 일본이 이번엔 태평양의 작은 암초를 두고 분쟁을 벌이고 있다. 섬인가, 단순한 바위에 지나지 않는가. 도쿄(東京) 남쪽 1700㎞ 지점에 떠 있는 산호초 오키노토리를 무엇으로 볼 것인지가 핵심 쟁점이다.

지난 10일 오전 오키노토리 주변에 중국의 해양조사선 '과학1호'가 나타났다. 해상자위대의 P3 초계기가 출동해 동향을 감시했다. '과학1호'가 이 부근에 출현한 것은 이달 들어 여러 차례다. 마치무라 노부타카(町村信孝) 외상은 이날 외교 경로를 통해 "일본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침범했다"고 공식 항의했다. 일본의 각료와 외교관들은 이달 들어 매일 중국에 이런저런 공식.비공식 항의를 거듭하고 있다.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도쿄도지사는 "내년 봄 오키노토리 해역에 정치망 어선을 보내 고기를 잡도록 지원할 계획"이라며 "일본의 경제수역임을 확실히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중국 외무부는 "공해상에서 정당한 탐사활동을 했을 뿐"이라며 "오키노토리 해역은 EEZ 설정 대상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일본은 오키노토리 주변 반경 200해리의 바다가 EEZ에 해당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중국은 이를 부인한다. 섬이 아닌 바위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국제해양법상 섬은 EEZ의 설정 근거가 되지만 바위는 영토로 인정받아도 주위에 EEZ를 설정할 수 없다.

일본 여론은 중국의 움직임에 매우 민감하다. 지난달엔 일본재단을 중심으로 한 민간 탐사단이 오키노토리에 상륙했다. 방송사들도 이달 들어 경쟁적으로 현지에 촬영팀을 보내는 등 여론을 환기하고 있다.

오키노토리는 위도상 대만과 하와이 호놀룰루보다 더 남쪽에 있는 일본의 최남단 영토다. 전체 크기는 동서 4.5㎞, 남북 1.7㎞이지만 대부분 물에 잠겨 있다. 만조 때엔 폭 몇m의 바위 두 개가 수면 위로 70㎝ 정도 드러날 뿐이다. 하지만 이 산호초를 근거로 일본은 국토 면적보다 더 넓은 40만㎢의 EEZ를 설정해 두고 있다.

일본은 1989년 600억엔의 공사비를 들여 바위섬 둘레를 콘크리트와 철제 구조물로 둘러쌌다. 파도에 침식돼 영원히 수면 아래로 잠기게 되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다. 시설 관리비에만 해마다 2억엔이 들어간다. 이곳 주변엔 코발트.망간 등이 풍부하게 묻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키노토리는 대만과 괌을 잇는 지점에 있다. 대만 문제와 관련, 무력분쟁이 발생할 경우 예상되는 미군 함정의 이동경로에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일본 당국은 "중국 배가 해양조사라는 명목으로 올 들어 20여 차례 EEZ를 침범했는데 실제 목적은 잠수함 항로 개척에 있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도쿄=예영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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