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와 춤을⑧] “말똥은 절대 팔 수 없다”황제의 속내를 읽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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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의 대장군 류인궤(劉仁軌, 602~685)는 문무를 겸비했다. 만년에는 조정에서 영예직무를 맡아 소일하며 편안하게 지냈다. 하루하루가 태평스러웠다. 당태종 역시 그를 매우 존중했다. 어느날 황실이 직영하는 각종 공장들을 관리하는 소부감(少府監) 배비서(裴匪舒)가 황제에게 한가지를 건의했다. 황제 전용 마굿간의 말똥을 모아 내다 팔면 큰 돈을 벌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 말을 들은 황제는 류인궤에게 의견을 물었다. 류인궤는 서두르지도 미루지도 않고 대답했다. “이는 나쁜 제안은 아니지만 훗날 자손대대로 이씨 가문의 황제들이 말똥을 팔아 돈을 벌었다라고 전해질 터이니 이는 적절치 못한 일”이라며 완곡하게 반대했다. 류인궤의 반대로 황실의 대담한 돈벌이 시도는 실현되지 못했다.

이 일화를 자세히 살펴보자. 이 돈벌이 제안에 반대한 것이 류인궤라고 생각하면 순진한 생각이다. 실제 말똥 판매를 반대한 사람은 류인궤가 아닌 당고종이었다.

황제는 어떤 류의 사람인가? 전국시대의 양혜왕(梁惠王)은 지금으로 치면 중국의 한 개 성(省) 넓이의 국토면적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씀씀이가 커 앞뒤로 12량을 이은 초호화 대형 마차를 10여 대나 소유하고 있었다. 당 고종은 당태종의 아들이다.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크고 가장 부유한 국가를 다스리고 있었다. 무릇 하늘아래 왕토가 아닌 곳이 없었고 천하에 왕의 신하가 아닌 자가 없었다. 이런 그가 돈이 필요하다면 불러 모을 수 있었고, 조문을 써 내리면 사방에서 천하 재물을 모두 보내왔다. 그가 얻고자 하는 것이 있으면 바로 받아주십사하며 보내왔던 것이다. 그런 인물이 말똥을 팔아 돈을 벌 필요가 있었을리 만무하다.

황실이 직접 물건들을 만드는 것은 중국의 전통이었다. 손수건이나 옷가지 같은 수공업 제품은 말할 것도 없이 청나라 때에는 황궁내에서 총과 대포를 만드는 무기공장에서부터 시계·안경·태엽식 완구차량 공장까지 만들 수 있는 것들은 모두 있었다. 게다가 여기서 만드는 제품들은 모두 최상품들이었다. 강희제 시기 황궁에서는 폭죽과 대포를 만들었다. 옹정시기의 각종 양식의 안경·망원경·시계를 만드는 기술은 모두 최고 수준이었다. 이것들은 당시 중국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최첨단 제품들이었다. 상식적으로 이것들은 팔아서 돈을 벌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유사시에는 실전에도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황제는 폭죽 쏘는 대포나 원명원의 정자나 누대 누각 구석구석에 설치한 수십 수백개의 안경과 망원경을 가지고 자신의 무료함을 달랬을 뿐, 이것들을 결코 돈벌이에 쓰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황제는 돈이 부족하지 않았다. 부족한건 체면이었다. 당신이 만일 황제의 체면을 세울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것을 보고하면 그만이었다. 시시하다고 여기는 것도 의외로 통할 수 있었다. 수나라 문제(文帝) 시절의 대신 양소(楊素)는 황실의 별장 격인 인수궁(仁壽宮)을 짓는 업무를 맡았다. 그는 판을 크게 벌였다. 산 골짜기에 궁궐을 짓는 큰 공사인지라 징용된 인부들이 공사 과정에서 많이 희생됐다. 자치통감에 따르면 인부 수 만 명이 죽었다고 전한다. 이 소식을 들은 수문제는 격노했다. “국법으로도 수차례에 걸쳐 건물을 크게 짓지 말라고 명령하고 훈계한 바 있거늘 네가 앞장 서서 어기다니? 고향에 내려가 반성하라”는 황제의 엄명이 떨어졌다. 이에 양소는 안절부절 못하며 집에 돌아왔다. 자초지종을 부인에게 말하니 부인은 “황제의 질책은 당신의 업무 처리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요. 곧 무마될 것입니다”라며 도리어 즐거워했다. 과연 그날 밤 황제는 황후와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 양소를 남몰래 초대했다. “양공이 우리 부부가 편안하게 만년을 보낼 거처를 만들어 주었으니 이 어찌 충성스러운 일이 아니겠는가”라며 양소를 오히려 격려했다. 남북조시대 양(梁)나라 무제(武帝)시기에 대신 가운데 한 명인 하침(賀琛)은 국가 연회에 오르는 요리의 갯수를 줄이고 황궁의 몇몇 건물들은 축소하자는 건의를 올렸다. 그런데 황제는 이 건의를 듣고도 아무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사실 양무제는 검소함으로 유명한 황제다. 모자 하나를 2~3년 동안 쓰고, 이불 하나도 여러해동안 덮을 정도였다. 하지만 검소함이란 것이 황제가 자기 입으로 말할 때 비로소 통하는 것이지 일개 신하가 제멋대로 건의할 성질의 주제가 아닌 것이다.

여기까지 말하면 여러분은 핵심을 눈치챘을 것이다. 류인궤의 출중함은 그가 황제가 생각은 하고 있으나 입밖으로 차마 직접 말하길 꺼리는 것을 잘 드러내 놓고 말한 데에 있다. 황제는 본래 절약하고 검소한 것을 알려지길 원한다. 그는 손익을 스스로 책임지는 사람이다. 단 류인궤 같은 대신은 황제를 겉으로 따르지 않았다. 이는 돈 몇 푼 아끼는 문제가 아니다. 바로 대당제국과 같이 큰 세계 제국의 체면 문제였다. 황제가 말똥을 팔지 않겠다고 생각한다면 팔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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