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간 지구 한바퀴 세계 문화 '몽땅 체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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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20대 젊은이 다섯명이 짐을 꾸렸다. 내달말부터 1년 동안 중국·유럽·아프리카를 거쳐 아메리카 대륙까지 지구를 한바퀴 돌며 세계 문화를 체험할 요량이다. 단지 '보고 온다'는 수동적 차원에 머물지 않기 위해 이들은 짐 속에 중요한 것을 추가했다. 그것은 우리 문화를 알리기 위한 북과 장구, 그리고 우리의 혼이다.

# 우리가 미쳤다구요?

안녕하세요. 우리는 이름도 거창한 '세계 공연문화 탐험대'입니다. 중앙대 연극학과와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들로 지난해 겨울 의기투합했습니다. 멤버는 탐험 대장인 저 김형준(26)과 대원 오대석(27)·이경운(25)·김재화(22)·김은진(21) 다섯명입니다.

저희들은 3월말부터 딱 1년간 지구 한바퀴를 돌며 세계 문화를 보고, 느끼고, 공부할 작정입니다. 연극·무용 등 공연 뿐만 아니라 결혼식·축제 등 그들의 사는 방식이 투영된 모든 것이 우리의 연구 대상입니다.

사람들은 저희를 삐딱하게 바라봅니다.4학년 졸업반을 앞두고 떠나다니 제정신이 아니라는 거죠. 총 8천여만원의 경비도 큰 부담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굴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꿈은 '진짜 배우'가 되는 겁니다. 그 소중한 걸 배우는데 1년간의 고생이 무슨 대수겠습니까.

해외 문화를 단지 경험하기만 하냐구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도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바로 한국의 마당극입니다. "우리는 이런 걸 갖고 있는데 너희는 무얼 갖고 있느냐"는 일종의 의사소통 수단인 셈이지요.

만인의 공통 관심사인 '죽음'을 주제로 한 '사마장자 우마장자 설화'를 창극으로 풀어볼 생각입니다. 사마장자가 저승에 가기 싫어 착한 우마장자를 대신 보내고 이 때문에 나중에 벌을 받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설화를 바탕으로 저희가 머리를 싸매고 만든 작품입니다.

40분짜리 공연 중간 중간에는 사물놀이·소고춤·무당굿 등을 넣었습니다. 우리는 이 마당극으로 각국의 도시에서 질펀하게 난장을 벌여볼 참입니다. 외국인이 우리 공연을 보고 어깨를 들썩이는 모습이 벌써 눈에 선하네요.

저희는 출발 한달여를 앞두고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하루 24시간을 쪼개 쓴다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1백일 넘게 합숙을 하며 오전에는 도서관, 오후에는 연습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냅니다. 팀원 각자가 이탈리아어·스페인어·중국어·러시아어·프랑스어를 하나씩 맡아서 공부도 합니다. 얼마 전엔 마당극을 위해 평택농악단과 안성남사당패로부터 사물놀이를 전수받았습니다. 외국인에게 보여주는 건데 대충 만들 수는 없으니까요.

# 세계인들이여 우리가 간다

우리는 최대한 육로를 통해 이동합니다. 멋지게 말하자면 '문화 대원들, 걸어서 지구 한바퀴'입니다. 35개국을 돌며 기차·버스·자동차 등은 원없이 타게 됐습니다.

3월 26일 드디어 인천항에서 배를 타고 중국으로 첫발을 내디딥니다. 중국의 경극·서커스 등 공연문화도 체험하고 베이징(北京)대 연극학과의 워크숍에도 참여할 계획입니다. 기차를 타고 베트남·캄보디아·태국을 거쳐갑니다. 네팔의 에베레스트산에서는 트래킹을 하고 인도로 넘어갈 계획입니다.

한여름쯤엔 유럽에 있을 겁니다. 7월 프랑스 아비뇽 연극축제, 8월 영국 에딘버러 축제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른 공연 단체처럼 부스를 할당받아 그간 여러나라에서 갈고 닦아온 마당극을 본격적으로 선보일 작정입니다.

유럽의 문화에 휘둥그레질 무렵, 저희는 미지의 세계 아프리카로 떠납니다. 모로코·알제리·탄자니아 등지에서 40개 부족의 다채로운 문화를 접할 겁니다. 언어는 필요없습니다. 우리가 갖고 간 북과 장구의 울림이 그들의 마음을 열 수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유난히 축제가 많은 남미, 최고의 공연 문화를 가진 뉴욕의 브로드웨이는 우리 여행을 총정리하는 데 그만입니다.

우리는 이번 탐험에 대한 대원칙을 세웠습니다. 매일 저녁 공연을 관람한다는 것입니다. 대원들의 각자 머리 속엔 어떤 계획이 그려졌을까요.

# 걱정되는 몇가지들

준비? 완벽합니다. 패기? 만만합니다. 체력? 좋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학생들인 저희가 가장 난감한 부분은 돈 문제입니다. 저희는 지난 겨울 주유소·스키장·과외 아르바이트를 해서 각자 5백만원씩 모았습니다.

그러나 가장 싼 곳에서 잠을 자고 슈퍼마켓에서 음식을 사먹는 수준으로 계산해도 경비는 총 8천여만원이 소요됩니다. 당장 어떻게 조달을 할지 좀 막막합니다.

또 한가지 탐험을 가로막는 요인은 황당하게도 비자 문제입니다. 미국과 러시아·베트남 등 비자가 필요한 곳이 여러 곳 있지만 학생 신분으로는 비자가 잘 나오지 않아 요즘 애를 태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계획상 차질은 없을 것 같습니다. 세계 주요 15곳에 있는 현지 지원자들이 우리를 물심양면 도와줄 거라 연락을 해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저희 여행기는 인터넷 홈페이지(www.freechal.com/goworldgo)를 통해 생중계됩니다. 많은 관심과 응원 바랍니다.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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