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 제2부 薔薇戰爭 제2장 揚州夢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구국의 영웅.

문자 그대로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해낼 수 있는 영웅.

장보고와 정년을 빌려 구국의 영웅이란 표현을 하고 있는 두목의 말을 듣자 비로소 왕정은 두목이 왜 자신의 집을 방문했는지 그 이유를 확연히 알 수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습니다, 왕대인."

두목이 말을 이었다.

"술집의 기녀들은 장보고와 정년이 안사의 난을 평정한 곽자의와 이광필보다 더 위대한 호걸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옛말에 이르기를 조명시리(朝名市利)라 하였습니다. 명성은 조정에서 다투고, 이익은 저자에서 다투라 하였으나 조정에서 떠도는 명성보다 이처럼 저잣거리에서 떠도는 평판이야말로 정의가 아니고 무엇이겠나이까. 따라서 소인이 왕대인을 찾아온 것은 장보고와 정년에 대한 상세한 내력을 알고 싶어서였습니다."

"하오면."

왕정이 조심스럽게 말을 받았다.

"어째서 대인 어른께오서는 그처럼 신라인 장보고와 정년에 대해서 알고 싶어 하시나이까."

그러자 두목은 묵묵히 술을 들이켰다. 청명시절에는 '들쥐가 사라지는 대신 종달새가 나타난다'는, 예부터 내려오는 말 그대로 봄비가 내리는 살구꽃 나뭇가지 위에 이름 모를 새 한 마리가 날개를 접고 앉아서 지지배배 소리 내어 울고 있었다. 적요한 정적 속에서 들려오는 새 소리를 들으며 침묵하고 있던 두목은 문득 얼굴을 들어 왕정을 쳐다보며 말하였다.

"왕대인께오서도 아시다시피 지금 나라는 어지럽고, 곳곳에 변방의 번진들이 일으킨 난이 들불처럼 번져가고 있습니다. 선대의 황제 헌종께서는 이사도의 난을 토벌하시고, 번진의 발호를 억제하심으로써 잠시 평화가 온듯하였으나 또 다시 변방의 오랑캐들이 반란을 일으켜 나라의 운명은 바람 앞의 등불처럼 거센 바람에 언제 꺼질지도 모르는 풍전등화의 화급한 상태이나이다. 따라서 지금이야말로 나라를 구하는 영웅이 나타날 때라고 소인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청루의 기녀들이 노래한대로 신라인 장보고와 정년이 곽자의와 이광필을 능가하는 구국의 영웅이라면 마땅히 장보고와 정년의 평전을 기록하여 남겨 놓아야 한다고 소인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야만."

두목은 술잔을 단숨에 비우고 이를 악물고 말을 맺었다.

"흙먼지를 말아 일으키며 다시 쳐들어올 영웅이 홀연히 나타나 이 어지러운 난세를 극복할 것이 아니겠나이까."

두목의 말은 의미심장하였다.

'흙먼지를 말아 일으키며 다시 쳐들어 온다'는 말은 두목의 시에 나오는 가장 유명한 용어 중의 하나다. '권토중래(捲土重來)'란 단어인데, 이는 두목의 시를 모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대부분 알 수 있을 만큼 유명한 고사성어가 되어버린 것이다.

물론 왕정도 두목이 쓴 이 문장을 잘 알고 있었다. 왕정은 이미 벼슬에 오르기 전에 두목이 쓴 '아방궁의 부'라든가, 혹은 곳곳에서 일어나는 번진의 난을 걱정해서 천년 전의 역사학자 가의에게 부친 '감회시'등을 통해 두목의 우국지심(憂國之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왕정이 두목의 애국심에 감탄했던 것은 바로 '흙먼지를 말아 일으키며 다시 쳐들어 온다'의 뜻을 지닌 '권토중래'가 나오는 '제오강정(題烏江亭)'이란 시를 읽고 난 뒤부터이기 때문이다.

이 시를 짓게 된 데는 유래가 있다.

두목은 어느 날 지방을 순시하던 중 오강(烏江)의 객사 아래 머물게 되었다. 오강은 안휘성(安徽省) 화현(和縣) 동북쪽에 있는 강으로 일천년 전 항우가 자결한 곳으로, 또한 항우의 사당이 있는 강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객사에서 머무르는 두목은 한밤중 항우의 사당이 있는 오강묘(烏江廟)에 나아가 참배를 하고, 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면서 깊은 감회에 사로잡혔던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