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운동 전문성 높여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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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20세기 후반 이후 시민운동은 민주주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시민운동의 발상지인 유럽의 경우 시민단체는 사회변화의 가장 영향력있는 세력이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한 녹색운동은 독일은 물론 유럽연합(EU) 전체에 환경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일깨웠고, 현재는 정당으로 발전해 사회 전분야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1990년대 이후 유사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60년대부터 80년대 중반까지 사회변화의 주체는 학생운동이었고, 80년대 후반부터는 노동운동이었다. 학생운동이 민주화에 앞장섰다면, 노동운동은 작업현장에서의 근로조건 개선과 더불어 시민들의 생활수준을 끌어올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제 시민운동이 바통을 이어받아 시민사회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최근 들어 TV뉴스 시간에 각종 사회 부조리·부정부패 등을 보도하면서 인터뷰에 등장하는 인물은 하나같이 시민 운동가다. 이전까지만 해도 대학 교수라든가 동 분야의 전문 연구원들이 등장했는데 이 자리를 시민운동가들이 대체하고 있는 것이다.

시민운동에도 정의하기 힘들지만 적도(適度)와 정도(正道)가 있다. 그런데 한국의 시민운동은 아직도 개선돼야 할 점이 많다. 첫째, 한국의 시민운동은 환경문제·교통질서 캠페인 등 시민생활 주변에서 발생하는 문제 대신 정치개혁·경제민주화 실현 등 체제변혁과 관련된 거창한 문제를 다룬다. 유럽에서는 정당 등 정치집단이 다루는 문제를 한국에서는 시민단체가 해결하려 든다. 둘째, 시민운동단체를 결성해 수십 명의 상근 인력을 두고 그들의 생계를 위해 기업에 후원금을 요구하거나 심지어 수익사업까지 전개한다. 셋째, 시민단체가 정부정책에 대한 평가와 방향제시는 물론 개별기업의 경영활동에까지 관여한다. 심지어 정부가 의약분업과 같이 개혁적인 정책을 실시할 때 시민단체를 동원해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유럽과 같이 시민운동이 성숙된 국가 차원에서 볼 때 이러한 특징들은 시민운동 고유의 기능을 벗어나는 것이다.

필자는 시민운동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 현재의 시민운동이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전개돼 한국사회가 한 단계 더 성숙되었으면 한다. 우선 시민운동은 전문성에 기초해야 한다. 시민단체에 참여하는 인사는 관련 분야 전문가여야 한다. 시민단체가 지향하는 목적이 달성되면 당해 시민단체는 없어진다. 단체를 위한 단체가 아니라는 뜻이다. 의약분업의 실패사례가 단적인 예다. 의약분업 이후에 발생할 사회적인 문제를 전혀 고려하지 못한 채 외국에서 하니까 우리도 따라야 한다는 식의 시민운동을 전개한 결과 시민을 불편하게 하고 시민으로부터 소외당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또한 시민단체 내 상근 인력은 최소화하고, 사안이 발생할 때 자원봉사자들을 활용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 옥스팜(Oxfam:영국에 본부를 둔 NGO.책·CD 등 폐품을 팔아 그 기금으로 제3세계를 지원하는 단체)이 그 전형적인 예다. 상근 인력이 많아지면 조직 내의 관료화는 물론 운영비 부담으로 여러 사업을 백화점식으로 전개하게 마련이다. 이 경우 전문화와는 거리가 멀어지고 시민들에게 부담만 가중시킬 뿐이다.

실정법 테두리 안에서 공공의 선을 추구하되, 합리적 대안모색에 앞장서야 한다. 지난 16대 총선에서와 같이 시민단체들이 연대해 특정후보의 낙선운동을 전개하는 것 등은 바람직한 시민운동의 모습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시민단체들은 세계화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국제경쟁력을 어떻게 향상시킬 것인가에 관심을 기울였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우리 시민단체는 기업의 지배구조에 관여하거나, 소액주주를 대신한 소 제기에 급급하고 있다. 그러나 경영권에 관한 것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기업에 맡기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오히려 자본주의 발전 모체인 기업활동을 규제하는 제도나 법률 개선 활동을 전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세계화 경쟁력의 3대 척도라 할 수 있는 자유화·규제 완화·민영화에 앞장서야 한다.

우리에게는 이제 자본주의 이외에 대안이 없다. 건전한 자본주의 발전을 위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역할을 시민단체가 담당해 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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