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화·주5일제 등 복병 수두룩 노동계 春鬪 심상찮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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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다음달 이후 본격화할 기업들의 임·단협(임금 및 단체협약협상)을 앞두고 노동계의 움직임이 심상찮다.

열이틀이 지나도록 발전노조의 파업이 해결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으며 지난달 27일 파업을 철회했던 철도노조가 정부의 민영화 강행방침에 반발, 재파업을 추진할 움직임이다. 상당수 기업의 노조들도 공공부문 노조의 투쟁과정을 지켜보며 본격적인 임단협 준비에 들어갔다.

정부는 불법파업을 저지하지 못할 경우 월드컵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 경제회생에도 큰 타격을 줄 것이라는 판단 아래 '강력대응'의지를 거듭 밝혀 노정대립이 심해지는 양상이다.

◇노동계 움직임=지난달 25일 철도·발전·가스노조의 연대파업으로 올 춘투는 이미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발전노조의 경우 3~4일을 못넘길 것이라는 정부의 예상과는 달리 5천여명의 조합원들이 흔들림 없이 파업을 강행하고 있다. 철도노조 협상 타결을 중재했던 한국노총도 "정부가 해고자 복직 등 합의사항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노사정위 탈퇴와 3월 말 총력투쟁을 벌이겠다"고 다짐한다.

지난달 22일 노사 합의안이 조합원 투표에서 부결되면서 신임 집행부 구성을 앞두고 있는 서울지하철공사 노조는 향후 강성 집행부의 출범이 예상된다.

지난 2월 말까지 노사분규 발생기업 수는 22개사로 전년 동기(10개사)에 비해 2배 이상 늘었다. 대한항공 조종사노조가 해고자 복직 등의 현안을 놓고 사측과 마찰을 빚고 있으며, 서울 등 6대 도시 시내버스 노조는 사측과 임단협 협상에 진통을 겪고 있다.

◇주요 쟁점=공공부문의 경우 민영화와 해고자 복직문제가 핵심쟁점이고 민간부문 노사의 쟁점은 근로조건개선 문제다.

<표 참조>

우선 주5일 근무제가 뜨거운 감자다. 주5일제 입법을 추진하기 위한 노사정위의 논의가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기업들은 앞다투어 주5일제 근무체제를 도입하고 있다.

업종과 규모면에서 근무시간 단축이 어려운 중소 영세기업에서 주5일제 도입을 위한 노사분규가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임금인상률도 문제다. 경영계(경영자총협회)와 정부(노동연구원)가 제시한 올해 적정 임금인상률은 5% 안팎인데 비해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최소 12%를 내세우고 있다.

◇전망=발전노조의 상급단체인 민주노총은 조합원들의 사법처리를 최소화하기 위해 지속적인 강경투쟁으로 정부를 압박해 나갈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한국노총도 산하 조직들이 민주노총으로 이탈하는 것을 막기 위해 노사정위 탈퇴를 거론하는 등 강경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발전노조 파업은 다음주 초가 고비가 될 전망이다.

노조 간부들에 대한 사측의 징계추진과 수배 노조원에 대한 경찰의 압박 등으로 노조측이 적당한 선에서 싸움을 접을 수밖에 없을 것이란 게 당국의 분석이다. 매각협상이 본격화되는 때를 대비, 파업을 정리하는 수순에 들어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철도노조 문제는 당장 재파업 등 극단적인 상황은 빚어지지 않을 전망이다. 다만 오는 11일부터 실시되는 현 집행부에 대한 찬반투표 결과에 따라 신임 집행부가 출범할 가능성도 있어 철도 노사관계의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각계 반응=전문가들은 노사분규의 피해가 경제손실에 그치지 않고 외환위기 이후 겨우 회복되고 있는 국가신뢰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최근 우리나라의 신뢰도 점검을 위해 방한한 신용평가회사 무디스의 고위 관계자는 "공기업 민영화의 차질없는 추진이 신뢰도 상향조정의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라며 "현재로서는 대폭적인 상향조정은 어렵다"고 말한 바 있다.

서울대 이근교 교수는 "한국이 외환위기를 맞은 근본적인 원인이 기업부실이었다는 것을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며 "기업의 구조혁신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근로자들도 일자리를 잃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민주화를 위한 전국 교수협의회와 교수노조는 8일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는 국민적 합의에 기초한 발전산업전략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최근 '김대중 대통령의 마지막 도전'이라는 사설을 통해 "한국이 개혁안을 완수하고 외국투자자를 유치하기 위해서는 노사관계 변화가 절대 필요하다"며 "金대통령은 임기 마지막해에 큰 변화를 원치 않겠지만 노동개혁은 반드시 이뤄야 한다"고 지적했다.

임봉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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