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개발·교육열 짐바브웨의 모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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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간 창기라이(58·사진) 짐바브웨 총리가 최근 정운찬 국무총리의 초청으로 2박3일간 한국을 공식방문했다. 1994년 수교 이후 짐바브웨의 최고위급 방한이다. 창기라이 총리는 이명박 대통령을 예방하고 정 총리와 투자보장협정에 서명했다. 그는 2008년 대통령 선거 1차투표에서 맞붙었던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으로부터 2009년 2월 총리직을 제안받고 이를 수락, 통합정부를 출범했다. 짐바브웨는 남아프리카공화국 동북쪽에 있는 인구 1250만 명의 국가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번 방한 성과는.

“한국과의 관계를 업그레이드하는 계기가 됐다. 한국에 대한 개인적 친숙도를 높인 것도 수확이다. 한국의 경제 개발은 짐바브웨에 훌륭한 모델이다. 특히 수출 주도로 경제 발전을 이뤘다는 점에 주목한다. 한국인들의 교육열이 오늘날의 한국을 만들었다는 것도 알게 됐다는 점도 중요하다. 짐바브웨의 도로·통신 등 인프라 건설과 광물자원 개발 분야에서 한국 기업과 호혜적 미래를 개척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짐바브웨는 남북한 모두와 수교했는데, 이번 천안함 사건에 대해선 어떻게 보나.

“너무도 불행한 비극이다. 희생자와 그들의 가족, 그리고 한국민 모두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전한다. 짐바브웨는 북한과 (80년 수교 이래) 오랜 외교 관계를 유지해왔다. 남북한 사이에서 어느 한쪽을 선택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다. 무엇보다 한반도의 평화를 강력히 바란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정치 입문 계기는.

“광산 노동자로 일하다 짐바브웨 광부연합 부의장을 거쳐 노동조합협의회의 사무총장에 올랐다가 자연스럽게 정치에 발을 들였다. 1999년 온건개혁 정당인 민주변화운동(MDC)을 창당해 독재 정권에 맞서기 위한 당연한 선택이었다.”

-무가베 대통령과의 통합정부에 대한 평가는.

“완벽하진 않다. 나라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그래도 일정 부분은 성과를 거뒀다. 서방의 경제 제재도 완화됐고, 정치적 안정을 찾고 있다. 특히 경제 위기도 회복 국면에 접어들어 인플레이션도 (한때 2억%까지 치솟았지만) 이제는 상당히 안정됐다. 지난해부터 달러를 통용시켜 외환거래 시스템을 안정화했다. 외국 기업들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서다.”

글=전수진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모간 창기라이=고교 졸업 뒤 니켈 광산에서 일하다 노동운동을 거쳐 정치에 뛰어들었다. 1999년 민주변화운동(MDC)을 창당하며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의 강한 적수로 떠올랐다. 2008년 대통령 선거 1차투표에선 무가베 대통령을 앞섰으나 2차투표를 앞두고 야당 탄압에 항의하는 표시로 사퇴했다. 그 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무가베 대통령을 규탄하는 의장성명을 채택하는 등 국제사회 압박이 거세지자 무가베가 그에게 총리직을 제의하면서 화해가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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