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2월 한국의 교육 현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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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28일 오후 이화여대 가정과학관 한 강의실에서 이 대학 과학교육과 신입생 60여명이 특별한 '과외수업'을 받고 있었다. 박사과정 대학원생인 강사는 학생들이 고교에서 배웠어야 할 자기장에 대한 법칙을 실험장치와 모형 등을 놓고 열심히 설명했다.

지난 25일부터 하루 세시간씩 나흘 동안 진행된 이 수업은 고교 교과과목인 물리Ⅱ. 이공계 신입생들이 필수 교양과목인 물리강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현상이 해마다 심해지자 올해 처음 마련한 특강이다. 지난달 14일부터 25일까지는 자연대 신입생 80여명에게 물리학을 따로 가르쳤다.

고교에서 문과였던 정다운(18)양은 "물리Ⅱ는 학교에서 안 배워서 오늘 들은 내용도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배윤정(18)양은 "생물·지구과학을 선택해서 물리·화학은 모른다"며 "특강이 없는 화학은 단과학원에 다니면서 배울 생각"이라고 말했다. 강사인 이영미(李英美)씨는 "쉽게 가르쳤는데 못 따라오는 학생이 적지 않았다"며 "이들이 전공수업을 어떻게 들을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전반적인 학습능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되는 '이해찬 세대' 신입생들을 맞은 대학들이 특히 이공계 학생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문과생이 이공계를 지원하는 '교차지원'이 성행하고 있는 데다 이과생들도 수능에서 점수 따기가 어려운 물리과목을 기피하는 경향까지 겹쳐 '물리를 모르는 이공계 대학생'들을 양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는 올해부터 심화·정규·기초 등 세개 반으로 나눠 교양물리를 가르친다. 기초반은 수식을 전혀 쓰지 않고 물리학의 기초만 가르치게 된다. 교양물리 과목을 4년 동안 맡아온 김수봉(金修奉)교수는 "공대 신입생 가운데 고교에서 물리Ⅱ를 배운 학생이 절반도 안된다"며 "기초법칙을 모르는 학생도 많아 도저히 한 강의실에서 가르칠 수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서울대는 물리뿐만 아니라 수학·화학 등 이공계 필수 교양과목의 학생들간 실력차가 크다고 판단, 올해부터 심화·정규·기초 등 수준별 수업을 본격적으로 시행할 계획이다.

연세대는 이공계 신입생들간 실력차가 계속 벌어지자 수학에 대해 우열반 제도를 도입할 계획이고, 성균관대는 지난해부터 미적분 특강·개별과외 등으로 이과 과목 실력 부족을 해결하는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화여대 김성원(金聖源)교무처장은 "최근 서울시내 6개 고교를 대상으로 조사한 2001학년도 수능 과학탐구 영역 선택과목 현황에 따르면 물리Ⅱ를 선택한 학생은 전체의 6%에 불과했다"며 "과학과목의 기초실력이 해마다 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무영·홍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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