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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합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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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며칠 전 출근길 시내버스에서의 일이다. 요즘 버스가 으레 그렇듯 그다지 붐비지는 않았다. 몇 정류장 지났을 때 교복 차림의 여고생들이 우르르 버스에 올랐다. 여학생들로 갑자기 버스 안이 수선스러워졌다. 여학생들의 재잘거림은 언제나 그렇듯 풋풋하고 신선했다.

그러나 이도 잠시. 뒤쪽에 자리가 나자 우르르 몰려가면서 가방으로 툭툭 치고 간다. 급기야 한 여학생이 구두를 꾹 밟고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지나갔다. 반짝거리던 구두코가 흉하게 뭉그러졌다. 복잡한 시내버스 안에서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참으려 했다. 그러나 일순 이건 아니다 싶었다. 애 키우는 학부모 입장에서 일종의 직무유기를 하는 느낌도 들었다. 그 여학생에게 다가가 어깨를 톡톡 쳤다. "학생, 남의 구두를 밟았으면 최소한 미안하다는 말은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제서야 무안한 표정을 짓더니 간신히 "죄송합니다"라며 사과를 한다. 그러나 이내 얼굴을 홱 돌린다. '재수 없어. 별꼴 다 보겠네'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더 이상 얘기할 기력을 잃었다. 어쩌다 우리 애들이 이렇게 됐나.

그러나 가만히 따져 보면 애들 욕할 것도 없다. 그렇게 가르치고 키운 어른들 책임이 더 크다. 세상에 우리처럼 사과에 인색한 국민이 또 있을까. 가정에서건 사회에서건 여간해선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한마디 사과면 모든 게 해결될 텐데도 친구끼리, 심지어 부부 간에 감정의 골이 깊어가는 경우를 종종 본다. 미안하다고 말하면 자존심이 상하고, 나아가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안다. 사과에 인색한 대신 변명에는 귀재들이다. 자신의 잘못엔 후하고 남의 실수엔 엄격하다. 길거리를 가다가 어깨라도 부딪히면 선진 외국에선 보통 서로 미안하다고 인사하고 지나간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상대방을 노려보기 일쑤다. 그러다 싸움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우리는 입만 열면 정치인들 욕을 한다. 그러나 이런 우리의 뻔뻔함이 그대로 정치판으로 이어진 것이라면 정치인만 욕할 것도 없다. 나라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사과 한마디면 과거 허물 다 덮고 미래로 나아갈 텐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나라가 일본이다. 무슨 쓰세키노 넨(痛惜の 念) 어쩌고 하지만 진정성을 찾아볼 수 없다. 이를 본받았는지 우리 총리도 얼마 전 야당에 사과한다며 '사의(謝意)'라는 묘한 표현을 썼다.

이번 주 나온 신간 중에 재미있는 제목이 눈길을 끌었다. '진실한 사과는 우리를 춤추게 한다'.'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를 쓴 켄 블랜차드와 마거릿 맥브라이드의 두번째 이야기다. 읽는 데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지만 긴 여운이 남는다. 원래 제목인 '1분 사과'(One Minute Apology)에 대체적인 내용이 담겨 있다. 즉 사과에 걸리는 시간은 길어야 1분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자신의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상대방에게 구체적으로 사과한 뒤 성실하게 이를 실천하라고 충고한다. 저자는 1970년대에 유행한 '러브스토리'의 저 유명한 대사 '사랑은 미안하다고 말하는 게 아니야'(Love means never having to say you're sorry)까지 정면으로 반박한다. '사랑이란 진심으로 잘못했다고 말하는 것'이라고.

사람은 누구나 불완전한 존재다. 그래서 실수도 하고 실언도 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사과는 누구나 하는 게 아니다. 사과를 하려면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제 올해도 보름 남짓 남았다. 주위를 한번 살펴보자. 내가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 가슴에 못이 박힌 사람들은 없는지. 한 해의 마지막을 반성과 사과로 용서하고 화해하는 자리로 만들자.

유재식 문화.스포츠담당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