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치문의 검은 돌 흰 돌] 프로기사 입단자 수 더 늘리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5면

어릴 때 프로기사가 되는 것은 대성의 전제조건이다. 조훈현은 9세, 이창호 11세, 이세돌은 12세에 프로가 됐다. 이들 천재가 걸어 온 코스를 보면 어릴 때 프로기사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 공감하게 된다. 한국기원이 25년 전 엘리트 코스인 연구생 제도를 만들고 이들의 입단 상한 나이를 ‘만 18세’로 정한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서봉수와 유창혁은 18세에 입단하고도 대성했기에 “늦게 입단해도 재능만 있으면 대성한다”는 반론의 근거로 인용되곤 한다. 하지만 이들은 2인자였다. 만약 이들이 엘리트 코스를 거쳐 좀 더 일찍 입단했더라면 1인자가 될 수 있었을지 모른다.)

입단 경쟁이 날이 갈수록 치열해지면서 이 ‘18세’ 언저리에 엄청난 병목현상이 발생했다. 근 5년 동안 15세 이전에 입단한 남자 기사는 박정환(13세 입단)이 유일하다. 대부분 18세가 다 돼서 프로가 됐다. 관문을 뚫지 못한 채 18세를 넘겨 눈물을 흘리며 바둑계를 떠난 실력자들도 부지기수다. 프로 되기가 너무 힘들어 많은 유망한 지망생이 바둑을 떠나 공부로 전환하고 있다(바둑을 잘 두는 학생은 대개 공부도 잘 한다). 바둑은 팬 감소와 함께 바둑 지망생 감소라는 이중의 위기를 맞게 됐다. 위기는 또 있다. 지금의 지독한 병목 아래서 프로 지망생들은 일단 ‘이기는 바둑’에 치중할 수밖에 없고 이런 잔재주는 영재들의 장래성을 갉아먹는 독소로 작용할 수 있다. 이창호-이세돌 같은 창조적 천재들의 출현이 힘들어지고 결국 세계무대에서 한국 바둑이 힘을 잃게 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바로 이런 점에서 한국기원이 ‘바둑발전위원회’를 두고 입단제도 개선을 위해 연구를 거듭해 온 것은 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지난주 공청회에서 드러난 결과물을 보면 뭔가 초점이 크게 빗나갔다는 느낌을 금할 수 없다. 현재 프로기사는 연간 10명(여자 2명 포함)을 뽑는다. 단 10명을 뽑으면서 연중 8차례나 치르던 입단대회를 3회로 줄인 것은 백 번 잘한 일이다. 연구생 제도를 폐지하거나 대폭 바꾸는 문제 역시 지금 시점에서 검토해 볼 만한 일이다. 14세 미만 영재들의 입단대회(2명 선발)를 따로 치르는 것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줄기가 아니라 잔가지에 불과한 사안이다.

핵심은 ‘병목’이었다. 연구 역시 병목 해소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마땅했다. 하지만 이 대목에 대한 해답은 너무 미진하다. 현행 연간 10명 입단에서 11명 입단으로 단 1명이 늘었을 뿐이다. 더구나 영재 입단대회의 2명을 제외하면 입단자 수는 오히려 10명에서 9명으로 줄어들게 된다. 이 숫자가 대폭 늘기를 기대했던 바둑 지망생과 학부모들은 조삼모사(朝三暮四) 비슷한 숫자 놀음에 크게 실망하고 있다.

한국 바둑은 주요 프로 기전에 ‘오픈제’와 ‘상금제’를 도입하는 등 일본이나 중국보다 한 발 앞서 개혁에 나서고 있다. 다른 스포츠나 예능 쪽과 달리 비리 한 번 없이 깨끗하게 살아 왔다. 그러나 프로기사를 뽑는 데는 대단히 인색한 자세를 고집한다. 40~80세까지 주는 연금 때문일까. 하지만 이런 제도는 바둑이 위기에 처하면 하루 아침에 사라지고 말 포말 같은 것이다. “한번 늘리면 줄이기 어렵다. 지켜보자”고 하는데 이번이 지나면 어느 세월에 다시 이 문제를 논의하게 될까. 바둑판 위에선 전광석화인데 바둑판 밖에선 행마가 왜 이리 느릴까.

바둑을 살리려면 병목을 해소해야 한다. 답은 너무도 간단하다. 입단자를 대폭 늘리고 프로대회 참가자를 확대해 ‘진입 장벽을 낮추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 다행히 결정된 안은 아니라니까 한국기원의 시원한 행마를 기대해 본다.

박치문 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