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경선의 舊態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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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민주당의 국민 경선제가 출발부터 상처가 나고 있다. 첫 지역인 제주의 국민 선거인단 응모 과열을 놓고 '동원 경선''돈 선거'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일반 유권자 3백78명을 뽑는 제주는 6만5천명이 몰려 1백72대 1을 기록했고, 울산·광주는 각각 1백17대 1, 1백8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특히 신청서가 막판에 대거 몰린 점을 들어 정동영·김근태 후보측은 "일부 후보들이 엄청난 돈을 풀어 조직적 동원을 했다"고 비난하는가 하면, 신청서 한장당 얼마씩 거래됐고,1백장을 모아오면 해외여행을 시켜준다는 소문이 나돈다고 한다. 국민의 관심이 높게 반영된 듯하지만 내막적으론 자발적 응모자는 극히 적고 돈을 미끼로 한 조직 줄세우기가 활개를 쳤다는 의심이 커지고 있는 개탄스러운 상황이다.

국민 경선제는 대선 후보를 뽑는 대의원 중 과반수를 일반 국민의 신청을 받아 채우는 제도다. 정당 개혁의 진전이라는 여론의 칭찬을 받았고, 민주당은 제주 경선을 미국 예비선거의 출발지인 뉴 햄프셔의 정당 민주화 축제처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그런 다짐은 흐려진 채 이처럼 혼탁과 과열 논란에 허덕이고 있다. 이미 후보들 사이의 인신공격·흑색선전 때문에 경선 분위기는 거칠어져 있다. 이런 양상이 계속되면 국회의원 총선 때의 추잡한 모습을 반복할 뿐이다.

국민 경선제는 낯선 실험인 만큼 국민의 자발적 참여를 끌어내기 힘들 것이다. 때문에 조직 동원이 불가피하며, 그것이 당의 저변을 넓히는 데 기여할 것이라는 엉뚱한 주장도 만만치 않다고 한다. 그러나 주자들 뒤로 줄을 세워 세(勢)를 과시하는 경선제에는 '국민참여'라는 거창한 의미를 달아줄 수 없다.

그런 인식 속에 치러지는 경선은 선거의 조기과열 현상을 일으킬 뿐 정치개혁과는 거리가 멀다. 지금부터라도 7명의 후보들은 국민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는 캠페인에 함께 나서야 하며, 공정 경선의 구체적인 틀을 계속 다듬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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