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준비하러 고향으로 갑니다"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 망명 생활 청산 러시아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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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정든 친구들 곁에 묻히고 싶어 고국 러시아로 돌아갑니다. 그동안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이제 죽음을 준비해야 할 나이가 된 것 같아요."

세계적인 첼리스트 겸 지휘자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75)가 28년간의 망명생활을 청산하고 고국 러시아로 돌아간다.

그는 75회 생일(3월 27일)을 앞두고 파이낸셜 타임스와 한 인터뷰에서 "올해 중 파리·런던·워싱턴 등 6개 도시에 흩어져 있는 살림살이를 정리해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정착하겠다"고 밝혔다.

또 "그동안 사들인 제정 러시아 시대의 회화와 가구를 모아 '로스트로포비치 박물관'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이들 작품은 그가 망명 생활을 하면서 '고향'을 곁에 두고 싶어 수집해온 것들이다.

"모스크바는 작곡가 쇼스타코비치·프로코피예프, 바이올리니스트 다비드 오이스트라흐, 피아니스트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에밀 길렐스 등 정든 친구들이 잠들어 있는 곳이죠. 저세상에서나마 친구들과 만나 보드카 한잔을 나누고 싶어요."

지금까지 1백20여곡의 첼로 협주곡·독주곡을 위촉받아 초연해온 그는 내년 빈필하모닉과 초연할 펜데레츠키의 '첼로 협주곡'을 마지막으로 초연 작업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브리튼·프로코피예프·쇼스타코비치의 해석에 관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그는 2005년 빈필하모닉의 '전쟁 레퀴엠'(브리튼 작곡) 연주를 지휘할 계획이다. 소련 정부가 금지곡으로 낙인찍은 이 작품은 1996년 로스트로포비치의 지휘로 60년 만에 러시아에서 연주됐다.

알렉산드르 솔제니친·보리스 옐친의 절친한 친구이기도 한 그는 자신의 아파트를 솔제니친의 『수용소군도』 집필 장소로 제공했고, 이로 인해 소련 정부의 탄압을 받아 74년 미국으로 망명했다. 이듬해 소련 시민권을 박탈당했으며 망명 21년 만인 95년에야 고국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태어난 그는 55년 당시 볼쇼이 오페라 프리마돈나였던 소프라노 갈리나 비슈네프스카야와 처음 만나 나흘 만에 결혼식을 올렸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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