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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거짓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전쟁을 취재하는 기자들에게 마치 금언처럼 전해오는 말이 있다. "전쟁이 일어나면 첫번째 희생자는 바로 진실"이 그것이다.

전쟁을 수행하는 정부로선 감춰야 할 비밀이 많다. 때론 거짓정보를 미디어를 통해 유포하기도 한다. 미디어는 전쟁 상황이라 할지라도 진실을 보도할 의무가 있다. 따라서 양자의 관계는 기본적으로 갈등 관계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 총리였던 윈스턴 처칠은 "진실이란 너무도 소중한 것이기 때문에 전시엔 거짓말이라는 보호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미국 언론인 I F 스톤은 "모든 정부는 거짓말쟁이들이 움직인다. 그들의 말을 그대로 믿어선 안된다"고 경계했다.

21세기 새로운 전쟁이라는 테러와의 전쟁에서도 정부와 미디어의 갈등은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뉴욕 타임스는 지난 19일자 신문에서 미국 국방부 안에 '전략영향국(OSI)'이라는 비밀스런 조직이 있다고 폭로했다.

9·11 테러사건 후인 지난해 11월 신설된 OSI는 외국 미디어를 통해 허위정보를 내보냄으로써 적국을 교란하는 한편 우방에도 미국에 유리한 여론이 형성되도록 하는 선전활동을 주임무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외국의 정치인·언론인·민간단체 지도자들에게 발신자 불명의 거짓정보를 대량 발송한다. 인터넷을 통한 해킹도 빼놓을 수 없다.

OSI의 일차 목표는 테러조직 알 카에다의 선전활동을 차단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테러와의 전쟁 다음 목표인 이라크 공격에 대해 비판적인 국제여론을 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OSI는 워싱턴의 유명한 로비·컨설팅회사인 렌든 그룹과 계약을 했다. 렌든 그룹은 과거 미 중앙정보국(CIA)의 대(對)미디어활동에 깊이 관여했으며, 1989년 파나마 침공 때 완벽에 가까운 미디어 통제 대책으로 명성을 얻었다.

또 걸프전 당시 쿠웨이트 정부의 홍보업무를 맡았으며, 현재 이라크의 해외 반정부단체인 이라크국민회의(INC)의 로비를 맡고 있다.

OSI의 흑색선전에 대해 보수파는 전쟁 승리를 위해 적을 속이는 거짓정보를 내보내는 것은 전술적으로 지극히 당연하고 합리적인 행동이라고 두둔한다. 반면에 진보파는 외국에 퍼뜨린 거짓정보가 미국 미디어를 통해 미국으로 들어와 결국 미국 국민을 속이게 된다고 비판한다.미국은 베트남전쟁에서 확전(擴戰)을 위해 통킹만 사건을 조작한 사실이 훗날 '펜타곤 페이퍼스'에서 폭로됨으로써 베트남전쟁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급격히 줄어들고 정치적 냉소주의가 휩쓸어 패전이라는 뼈아픈 결과로 나타났던 역사적 경험을 갖고 있다.

베트남전에서 심리전 책임자였던 찰스 보치니 퇴역 대령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선전활동'이라고 지적하면서 "우리가 하는 말을 사람들이 믿어주지 않을 때가 가장 위험한 상황"이라고 말한다.

미국 국방대학에서 사이버전쟁론을 강의하는 처크 데카로는 OSI를 가리켜 정보시대의 문제를 기계시대의 관료주의로 해결하려는 발상이라고 비판하면서 정보시대에 필요한 선전활동은 속임수가 아니라 신속한 판단력과 좋은 아이디어라고 지적한다.

전쟁을 치르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는 일이다. 거짓정보를 유포시켜 얻는 이득에 비해 신뢰의 상실로 인한 손해는 훨씬 크다. 『이솝우화』에 나오는 양치기 소년처럼 거듭된 거짓말이 가져올 참담한 결과를 생각해야 한다.

국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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