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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딛고 신발로 우뚝 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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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강석규 나바조스포츠 대표가 9일 ‘라텍스 축구화’를 들어보이고 있다. 그는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품질을 인정받고 싶다”고 말했다. [김도훈 인턴기자]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개막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축구 붐이 최고조에 이르는 이때가 스포츠용품 업체엔 더없이 좋은 마케팅 기회이기도 하다. 부산에 본사를 둔 축구화 업체 나바조스포츠의 강석규(60) 대표도 설레기는 마찬가지다. 강 대표는 “지난달 22일 국가대표팀이 출국하면서부터 축구화 판매량이 두 배로 늘었다. 한 유통업체로부터는 최근 3000족 주문을 받기도 했다”며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이 회사는 G마켓·옥션 등 주로 인터넷쇼핑몰을 통해 제품을 판매한다. 그는 “올해는 월드컵 특수로 4억~5억원 매출이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강 대표는 ‘라텍스 축구화’라는 기능성 제품으로 틈새시장을 노리고 있다. 축구화 앞부분의 외피와 스펀지 사이에 얇은 생고무(라텍스)를 넣은 제품이다. 기존 축구화보다 충격이 덜하고 10%가량 공이 더 멀리 나가게 한 것이 인정돼 한국·미국 등에 특허 등록도 했다. 강 대표는 “발의 볼이 넓고, 발등이 높은 한국인의 족형에 맞게 설계됐다”고 설명했다.

강 대표는 마음 놓고 달리기 한 번 할 수 없는 1급 장애인이다. 어릴 때 결핵을 심하게 앓다가 왼쪽 폐 기능을 잃었다.

“어릴 때부터 손재주가 있었다. 병원비라도 벌어볼 요량으로 1970년대에 신발 도안 일을 한 것이 축구화와 인연을 맺은 계기가 됐다. 나중에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나이키·아디다스 등에 신발을 납품했다. 그러나 이들이 80년대 후반 중국·동남아 등으로 생산기지를 옮기면서 일자리를 잃었다.”

이후 10여 년간 아파트 경비원 등으로 생계를 이었지만 ‘제대로 된 축구화를 만들겠다’는 열정은 한 번도 꺾이지 않았다. 그래서 틈틈이 축구화를 도안하는 일을 놓지 않았다. 그는 2007년 2월 다시 법인을 설립했다. 축구화 도안과 개발은 강 대표가 맡고, 생산은 아웃소싱을 했다. 본격적인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 것은 올 초 부산시 사상구 감전동에 있는 장애인종합지원센터에 입주하면서다.

“33㎡ 크기 사무실을 쓰는 데 관리비로 월 10만원만 내면 된다. 지원센터에서 마케팅이나 시장 개척 자문도 해주니 창업에 어려움을 겪는 장애인 기업인에겐 안성맞춤인 곳이다.”

그는 장애인 기업에 대한 편견을 거둬 달라는 쓴소리도 했다. “기사 쓸 때 ‘장애인 기업’이라는 표현은 삼가 달라. 아직도 우리 사회엔 ‘장애인이 만들었으니 오죽할까’라는 편견이 있다. 제발 품질만 보고 판단해달라.”

글=이상재 기자
사진=김도훈 인턴기자

◆장애인 창업보육실=중소기업청과 장애인종합지원센터가 지난해 2월 문을 연 장애인 전용 창업기업 인큐베이팅 센터. 서울·부산·대구·광주·대전 등 5개 도시에 40개 업체가 입주해 있다. 창업 5년 미만 기업이 입주 대상이며 최장 3년간 3.3㎡당 1만원의 운영관리비만 내면 된다. 법률·회계 자문·경영애로 상담도 받을 수 있다. 서울에선 입주 경쟁률이 20대 1에 이를 만큼 선호도가 높다. 중기청은 2012년까지 장애인 창업보육실을 전국 10개 도시 100곳으로 늘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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