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총무원 - 봉은사 갈등, 상생의 물꼬 트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조계종 화쟁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도법 스님이 9일 기자회견을 통해 “불교적 사유방식으로 종단 안팎의 문제를 풀고, 해법을 제시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올 3월부터 직영사찰 지정 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어오던 조계종 총무원과 서울 삼성동 봉은사 간에 대화 해결의 물꼬가 트였다. 종단 차원에서 보수 및 진보계 인사 14명으로 구성된 화쟁(和諍)위원회를 신설, 봉은사 사태에 대한 해법을 모색하기로 했다.

화쟁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도법 스님(인드라망생명공동체 상임대표)은 9일 기자회견을 열고 “오늘 아침에 총무원장 자승 스님께 임명장을 받았다. 두 가지를 요청했다. 첫째는 직영사찰 지정에 대한 행정절차 중지, 둘째는 봉은사 사태 관련 징계 절차 중지다. 총무원장 스님은 둘 다 수용했다”며 “곧 봉은사 측에 갈등을 야기하는 모든 대응의 중지를 요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위원장 원택 스님(녹색연합 공동대표·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도 “총무원과 봉은사 양측의 입장을 면밀히 살핀 뒤, 제3자가 보더라도 고개를 끄덕일 만한 불교적 해법을 내겠다”고 설명했다.

◆봉은사 직영사찰 지정 풀릴까=봉은사의 직영사찰 지정은 지난 3월 조계종 중앙종회를 통과한 사안이다. 이를 뒤집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인다. 총무원 집행부가 안게 될 정치적 부담도 너무 크다. 그렇다고 총무원이 직영사찰 지정에 대한 행정절차를 무작정 밀어붙이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총무원 측도 봉은사 직영사찰 지정에 대한 사전 논의가 충분치 않았던 점은 이미 인정한 바 있다.

결국 직영사찰 지정을 뒤집지 않는 선에서 봉은사의 자율성을 보장해주는 방안이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원로회의, 중앙종회, 본사 주지회의 등에서 “봉은사 직영사찰 지정에 대한 행정절차를 신속히 강행하라”는 요구가 빗발쳤음에도 총무원장 자승 스님은 “큰 틀에서 보고, 크게 얻자”는 입장을 보여왔다. 도법 스님은 기자회견 말미에 “총무원장께서 주어진 권력을 휘두르지 않고, 시민사회단체와 각계 각층의 조언에 귀를 열고, 합리적이고 바람직한 해결책을 찾자는 태도를 견지한 부분은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명진 스님, 봉은사 주지 재임할까=명진 스님의 봉은사 주지 임기는 11월까지다. 그 동안 명진 스님의 재임 여부가 쟁점이었다. 산문 출입을 금하며 1000일 기도를 했고, 봉은사 재정을 투명하게 운영한 공로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봉은사 사태’를 겪은 마당에 명진 스님을 주지직에 재임명하는 것도 총무원으로선 부담이다. 명진 스님도 총무원-봉은사 공개토론회에서 “한국 불교의 발전, 봉은사와 지역 발전을 위한 바람직한 안이 있다면 주지 자리에 구애 받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봉은사가 그간 일궈놓은 자율적이고 투명한 사찰운영 시스템을 유지하는 선에서 차기 주지 임명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불교계의 한 관계자는 “명진 스님은 주지직을 내놓더라도 봉은사 운영에 대한 공로는 인정받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한편 화쟁위원회는 사회적 현안인 4대강 정비사업에 대한 입장도 논의할 예정이다. 안으로는 종단의 문제, 밖으로는 사회의 문제를 향해 소통과 화합을 위한 해법을 제시할 계획이다. ‘화쟁(和諍)’은 신라 원효 대사의 중심 사상이며, 대립과 갈등을 소통을 통해 조화시킨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글·사진=백성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