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팔자 행진 '아리송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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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9일 주식시장에선 오후 3시 거래 마감 무렵 비명소리가 흘러나왔다.

외국인들이 마감 동시호가 때 순식간에 3500억원어치의 주식을 팔아치우며 순매도 규모를 4400억원대로 키웠기 때문이다. 더구나 외국인들은 정보기술(IT).화학.철강 등 전 부문의 주식을 골고루 팔아치우는 모습을 보였다. 외국인들은 지난달 22일 이후 14일째 내리 주식을 팔고 있다. 월별로도 10월 이후 석달째 순매도다. 이에 따라 시가총액에서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4월 말 44.1%에서 현재 42.1%로 떨어졌다.

◆ 심상찮은 외국인 동향=연말 증시의 신경이 외국인들의 움직임에 쏠리고 있다. 최근 외국인 동향엔 가볍게 넘기기 어려운 대목이 있다. 영국계 투자자인 헤르메스가 삼성물산 지분 전량(5.0%)을 팔아치웠고, 미국계인 캐피털그룹도 SK 지분 1.06%를 처분했다. 외국인들은 한국 증시의 간판주식인 삼성전자도 계속 처분해 지분율이 몇달새 60.12%에서 53.98%로 뚝 떨어졌다.

헤르메스와 캐피털그룹은 수많은 외국인 중에서도 장기투자자로 알려져 있다. 한번 투자하면 웬만해선 끄떡 않는 것으로 알려진 장기투자자들도 과감히 이익을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 부분적 이익실현=관심은 외국인의 의도다. 이날 외국인이 한꺼번에 주식을 던지자 "한국시장을 팔겠다(셀 코리아)고 작심한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외국인들과 직접 접촉하는 시장 전문가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대우증권 오세정 국제영업부장은 "전통적으로 12월은 연말을 앞두고 외국인들의 매매가 줄어드는 시기"라며 "최근 순매도는 환차익을 실현하고 환차손이 우려되는 종목을 빼는 포트폴리오 교체에 따른 것"으로 분석했다. 모건스탠리증권 박천웅 상무는 "최근 외국인의 순매도는 IT섹터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과 일부 펀드의 연말 차익실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때문"이라며 "주식을 사려는 외국인은 주가가 좀더 떨어질 것으로 보고 기다리는 중"이라고 말했다.

외국인들의 최근 움직임은 '총론 관망, 각론 일부 이익실현'으로 요약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최근 한국 시장을 이탈하고 있는 자금이 주로 단기성이 짙은 유럽계 자금과 헤지펀드라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달 유럽계 외국인들은 3000억원을 순매도했고, 케이맨아일랜드 등 조세회피지역의 외국인들도 2000억원을 순매도했다. 반면 장기 투자자가 많은 미국계 자금은 100억원을 순매도했을 뿐이다.

다만 일부 외국계 증권사 관계자들은 "헤르메스가 삼성물산을 처분한 것은 지배구조 개선 요구가 받아들여지기 힘들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며 "최근 적대적 인수합병(M&A) 방어장치 논의 등을 반 외국인 정서 확산으로 여기는 외국인들이 본격 이탈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상렬.정효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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